
시간을 쪼개어 굳이 다녀온.
아름다운 것을 보고난 이후엔 모든 욕망이 사라지는 - 외국의 미술, 박물관 관람을 하고난 뒤 한 끼도 안 먹는 경우도 - 것은 느즈막히 생긴 고질병이라. 이차원의 한 면을 삼차원의 실로 채워 다시 삼차원 한 면의 벽으로 만드는 그 기개와 과감함, 빛바랜 색조마저도 목마르게 좋아서. 찬찬한 관람 뒤 도록을 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까르티에전 예약과 주문해두었던 냉동식품 꾸러미를 모두 취소했다.
이토록의 아름다움이 곁에 있는데 어떤 무엇이 더 필요한지.
숨가쁘게 좋았고 어쩌면 꿈인 것 같은 기억을 안고 주말 내내 출근을 하며 순간순간 아, 그거 좋았지. 라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다.
가는 어깨를 감싸고 있던 슬립드레스라던가 빈티지 귀걸이, 앞이 뾰족한 슬링백. 늘 둥글게 말려있는 묶음 머리의 흔적과 은은한 그림자가 떨어지던 조형의 반지, 위상수학적인 목걸이, 윗면이 좀 더 두터웠던 안경테와 살짝 빗물이 어려있던 귓볼이라던가.
예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잔뜩 보며 먹고 마실 수 있어 더 즐거웠던.
내리는 비와 젖은 우산을 떠는 행동마저 즐거웠습니다.
팬레터를 간직하고 있다는 최애의 이야기를 떨리게도 이야기하시는 그 수줍은 태도와 헤밍웨이적 스픽이지 바를 거론하는 그 취향의 당당함이, 말을 뗄 수 없는 무언가에 또 풍덩 빠져있다는 것을 차마 고백하지 못하는 저의 거리감을 조금 한심스러워하면서도 여전히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엇비슷한 연배에 매우 흡사한 가정을 이루고 있기에 그 화제와 생각마저도 같아도 즐겁고 달라도 흥미로웠기에, 조금 안나 카레리나 생각을 했네요.
잘 쓰고 잘 먹겠습니다. 모쪼록 남은 공연도 행복하시길. 찾으신 귀고리가 제 기억에 남은 목걸이와 즐겁게 어울리시길.
귓볼에 뜯긴 흔적이 남아있는 것처럼 한 때 많은 곳에 구멍을 냈었고. 콧물로 코를 막고 밥 먹기가 불편해 혀와 입술을 막고, 그럼에도 아 있었었지 하고 일 년에 한 번쯤 X-ray로 확인하게 되는 것은 배꼽링. 한 때는 손가락 팔목 귓바퀴 목덜미까지 주렁주렁했으나 자주 물에 닿고 타인을 만지고 전화를 받아야 하니 시계 외엔 많은 것들을 빼놓게 되었고. 사실 지금도 악세사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너무나 아름다운 타인의 취향은 타인의 것으로 있는 것에 만족하기에 내가 굳이 껴보거나 소유하길 바라지 않게 됨. 내 것들도 충분히 넘칠 만큼 많아서.

좋다고 느낀 것들은 여전히 좋았고 - 코앞에서 바라보는 잘 연마된 발성과 행동 언어가 - 인물에 맞춰 지나치게 도식화된 말투와 언어에서 음, 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소년처럼 무구한 이목구비에 드리워진 푸른색 스팟라이트를 보며 떠올린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얼굴.

-하나쯤은 사고싶은 시리즈였으나 신품을 들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단종 이후 어쩌다 출장을 간 공간에서 드물게 올라온 중고 매물을 발견하고 한 시간쯤 자전거를 타고 생각보다 무거운 봉투를 받아 셈을 치르고 다시 두 시간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며 어떤 생각에 잠기고.
시간만큼 귀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뭔가 떠오르면 바로 사거나 금방 포기하는 편이지만. 구매까지 드물게 오래 욕망하는 물건을 만나게 되면 이 물건에 따라붙는 내 시간과 물건의 금액, 망설임, 구매 이후의 감가상각을 오래 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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