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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찾았던 너의 얼굴, 그 입술.

다행히 건강과 몸무게는 많이 돌아왔고. 새로운 일과 사람들은 나를 약간 혼란스럽게 하나 나이가 들어 무딘 감각으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늘 그렇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

뭔가 견딜 수 없어질 때면 당근에 저렴하게 올라온 티켓을 사서 아무 영화를 보고, 다른 차원에서 빠져나온 듯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다. 누군가의 상상 속 무른 세계와는 달리 발 아래 나의 세상은 여전히 단단하고.

경기가 확실히 안좋아졌다고 느낀 것이 옷 관련 일을 하던 지인들 대부분이 업을 접어서. 사이즈든 재고든 뭐든 보내주는 대로 착용하고 만날 때마다 몇 끼 식사로 대접하던 내게 마지막 상품을 보내며 이건 네 생각에 팔지 않았어, 한 발짝 늦은 메세지에 파워 숄더, 금장 단추가 재미있는 90년대 빈티지 자켓을 펼쳐본다. 귀한 분들 만남에 입어야지 라는 생각과 이것도 민폐인가 하는 자기검열을 매양 함께 떠올리고.

또래와 발 맞춘 적이 거의 없어 나는 늘 사무든 화장실 청소든 공장이든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럭저럭 살것이라 벅찬 희망을 갖고.

얼마전 처음 방문한 영화관에 초로의 노인분이 홀로 덩그러니 야간 시간을 담당하고 계셨다. 피로가 짙은 얼굴에 컬러감이 짙은 유니폼이 기묘한 부조화라 나는 또 그 모습을 떠올리며 이유없는 상념에 잠기고.

어떤 것을 구매하고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기업과 대표에 대한 소속감과 성취감, 상대적 우위를 함께 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더하여 기회가 있어도 그를 보유하지 않는 이들을 탓하는 모습조차 나는 경이로울만치 이해가 힘들어서.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나무들까지도 알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