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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이 있을때 여의도로 뛰어나갔고 다음날은 광화문, 그 다음날은 열한시까지 야근을 하고 꾸벅꾸벅 졸며 막차를 타고 인천공항, 일본을 잠시 거쳐 남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제는 남과 북을 거론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제게 한국은 어떠냐 물으며 걱정섞인 인사와 잡담을 나누고 누군가는 진지하게 망명을 권유하기도 하네요.

겪지 않으면 쓰지 못하는 저는 - 창작의 자질이 기본적으로 미흡한 - 언제나 현장에 있으려했고 가장 평화로운 때 사라짐을 꿈꿨던 만큼 감히 저의 어떪으로 약간이나마의 것들이 나아지길 항상 바라왔습니다. 절망과 피로뿐이었던 근간, 우리가 앞서겠다며 젊음은 뒤에 있으라 등을 보이던 연륜과 출근해야하는 회사원들을 모아 욕실을 내준 분, 샤워를 하는 사이 아침 식사를 챙겨주신 분, 지하철역까지 차를 태워주시며 내일은 나을것이라 고요한 위로를 건내주신, 이상하리만큼 피로가 없었던 그 밝고 추웠던 아침을 저는 오래 기억할 작정입니다.

출발 네시간 전까지 가는것이 맞나 망설였던 비행이었지만 어쨌든 잘 도착한 저는 이곳에서 목소리를 내보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시국이지만 안녕하시길, 저도 열심히 안녕하겠습니다.

당신의 얼굴, 나를 자주 허물어뜨리는 그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