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잠깐 지방을 다녀온 사이 남자 혼자 내 집에 머무르다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갔는데. 커튼에 꽂아놓은 꽃이며 조명에 씌워놓은 중절모며 침대 아래 솜털이 보송한 러그까지,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하여 놓는 나와는 달리 자신의 취향대로 집을, 정확히는 방을 쌓아놓은 모양새에 웃어버리고 말았지만 냉장고를 열어본 뒤엔 정말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먹을 게 너무 많은데, 그것도 선물용으로? -약속 있다고 했잖아, 내 선물이야. 대부분 2주도 더 남았고 상미기한 어쩔 셈이야. 내 협소한 인간관계와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미각을 아는 인지 너머 들려오는 오랜 정적에 수화기를 바꿔쥐다, 아 이 말을 잊었네, 진짜 고마워, 라는 말과 함께 화제를 돌린다.


좋아하지 않거나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어쨌든의 마음과 성의를 무시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 사소한 마음에 품이 들거나 노력이 필요해지면 이따금은 그 사람이 나와 가깝다는 이유가 그 성의를 짓밟거나 무시해도 되는 근거가 되어버리고. 


그런 것들이 자주 마음에 밟히곤 했던 내 다짐 또한 때로는 더할 나위 없이 가볍곤 해서.


공식적으로 좀 더 많은 인정 - 그 인정에 있어 빠르고 느림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 을 받길 바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