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혹은 제대로 된 금액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망설였다. 이러이러해서 좋다, 라는 문장을 완성하기에 앞서 나만 아는 몇가지들로 인해 내게만 좋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먼저 들어. 티켓을 사서 다시 영화를 보고, 순간 순간 터져오는 관객들의 웃음, 한숨,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 가뿐함에 십분 공감하며 이 영화가 정말 괜찮은 영화라는 사실이 엄청나게 기뻤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모두에게 멋진 영화라니, 내 과거가 드리운 몇 안 되는 근사한 순간 중 하나가 아닐지.
언젠가의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주 쯤의 가출을 행했다. 어딘가에서 덜미가 잡혀 경찰과 함께 학교로 돌아왔을 때, 주임 선생이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디어디를 다녔나?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전국 어디든 재워주는 사람이 있는 곳을 쏘다녔다. 조부의 옛집 근처에서는 노숙을 하기도 했다. 주사를 부리는 가장이 있는 집을 처음 접하기도, 그를 피해 옷장 안에 숨어 있으라는 친구의 말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어깨만 토닥여 준 기억도 있다. 배낭 안에 늘 몇개의 카스테라를 가지고 다녔고, 집을 나온 줄 모르는 어느 친구의 부모님에게 이런 걸 사오다니 어린애가 교육을 잘 받았네,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어느 분과 함께 수족관에 갔고, 처음 가본 노량진에서 회를 먹기도 했다. 그 분이 조근조근 내 손에 쥐어준 기차표를 환불하고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으며 죄책감과 어지러움을 함께 느꼈다고. 제주는 밝고 따뜻하고 아름다웠다고. 옥색 바다와 천혜향이라는 과일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이야기를 줄줄줄줄 늘어놓자, 어이없이 나를 바라보던 선생이 대꾸했다. 그럼 너는 진짜 여행을 한 거네?
그는 열일곱 여자애의 이주 간의 가출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온전히 스스로를 위한 시간과 장소를 애써 만드는 과정, 난 언제나 여행이란 여유를 뜻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미 어떤 자리를 지닌 이들이 다시 한번 다른 환경과 자극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어떤 간격, 혹은 돌아갈 곳이 있는 자들이 주는 특유의 가벼움 같은 것들. 이는 부유하는 스스로의 시간과 장소를 여행, 이라 칭하는 미소의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을 잃지 않으며,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고, 그렇기에 어떤 누구에게도 가장 깔끔한 타인으로 남을 수 있는. 위스키와 담배를 좋아하고, 자신의 직업을 가사도우미라 망설임 없이 이야기하며, 그만큼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기에 타인을 알고, 아끼고, 위로하고, 상처를 받지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는.
전개를 위해 도식적으로 그려진 케릭터와 지나치게 진부한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할 만큼 이 영화의 미소가 너무나 품위 있는 케릭터였다. 자존이 아닌 스스로의 오만함으로 타인에게 폐나 해를 끼치는 주인공을 적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한국영화 시장에서, 정말 상기할만한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사람을 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 환경이나 그를 둘러싼 조건이 아닌 스스로가 만드는 자신임을, 새삼.
-올 해 본 영화 중 가장 좋았음.
무척이나 흥미로운, 정말 준수한 영화였지만 나는 The Edge of Seventeen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 영화에 그렇게까지 마음이 가지는. 하지만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좋아해줬으면 - 사랑의 까탈스러운 포용과는 달리 좋아함의 그 자연스러움, 마음이 맞음, 그 관대함에 대한 - 좋겠어, 라는 대사와 공항 근처를 도는 그 짧은 순간에 깃든 표정만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Metcalf의 연기가 주는 울컥임의 결이 얕았던 것은 결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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