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탕 연대의 본질은 '공고한 우리가 내려다 본다'에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제작자들 -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된 - 의 행보가 기가 막히기 이를 데 없음. 그렇게 여성과 여성 문화를 무시하고 혐오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컨텐츠를 매번 가져와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디어에 적용함. 광고 매출이나 추후 통계를 보면 여성들이 돈을 쓴다는 사실은 자명하거든. 그리고 일단 가져오고 난 뒤에 이를 파는 척 부화뇌동하는 여성을 표현하고 그들을 조롱하는 빌미로 씀. 우리는 절대 흔들리지 않거든요? 십 년 이십 년 이 자리에 앉아서 저질 농담이나 흩뿌리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결코 서로를 배신하지 않거든요? 요즘 특히 화제가 되고 있는 - 대부분 여성인 - 이걸 같이 볼까요? 보기에 그럴싸하죠? 이런 것이 유행이고 인기가 많고 화제가 되고 돈을 쓴다네요, 거 참. 이것 보라니까요. 여성이 이렇게 가볍고 미개해요.
당연히 기회가 없어진 여성들은 시청자인 우리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혹은 그 컨텐츠를 탓할 수 밖에 없지. 그 컨텐츠를 데려와 여성의 기회를 또 하나 삭제한 제작자들은 화제성 있고 잘 팔리는 무언가를 만들었다며 서로들을 자축해댈테고.
각종 미디어에 주부, 혹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네요! 혹은 여성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뉘앙스의 문장이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는지. 63분짜리 어느 음식 탐방 프로그램에서 48번 나온 것을 내가 샌 적이 있음. 아 개좆 같아서 정말.
-때로 인간은 걷기 위해 태어난 것 같습니다.
이 나라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들과 이런저런 대화 중에 내가 어느 나라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낸 것과 그들이 그 나라로의 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나누게 되었다. 내게 그 나라의 생활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고민하던 내 생각을 치고 들어온, 하하 그 나라에서 일하는 배우자를 둔 주부들은 엄청 편하게 지내는 거 아닌가요. 인건비 싸니까 가정부 고용하고, 물가도 엄청 싸다면서요? 남편 덕에 여자만 호강하는 거죠. 중년 남성의 발언에 나는 정말 말을 잃을 만큼 화가 났다. -내가 그 나라에 다리와 가로등을 놓기 위해 6개월 동안 싸운 사람이야.
이 일에 개운함이나 가뿐함 같은 건 없다. 나는 내가 이 문장을 뱉은 이후 그 남성이 요구할 갖가지 증명과 소속에 대한 물음을 예견할 수 있었고, 더이상 내 개인 정보를 덧붙이고 싶지도 않기에 그 남성을 무시하고 그 대학생들에게 내가 아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에 주력했으니까.
내가 유이하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내 과거 중 하나는 내가 한 때 한국에서 100M 단거리가 가장 빠른 중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묻고 - 내 걸음걸이는 그 과거의 흔적으로 다소 어색하고, 거칠고, 거창해보인다 - 놀라워하기도 전에 그 사실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남성들 뿐이다. 내 대회와 체전의 기록과 문장과 메달과 혹은 자신들과 함께 달려보기를 원하는 이들. 그럴 때면 나는 오로지 웃는다. 열넷부터 내 스폰서는 나이키와 동아오츠카였고 열다섯에는 전지훈련비를 대는 조건으로 외국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으며 열일곱까지 국가대표 유망주로서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았다. 이런 내 시합은 한 번에 수십만 원부터 수천만 원의 훈련비가 소요되는 것이었다, 당신들과의 경주가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이 지난한 문장을 내뱉을 마음 대신 그저 웃고, 남성은 아주 간단히, 내가 거짓말을 하거나 시기적절한 농담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내 웃는 얼굴 하나로.
그들은 여성의 성과와 위대함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증명이나 대꾸없이 그저 무시와 웃음으로 일관한 나는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동조자, 혹은 부역자가 되었겠지. 나는 과거의 나를 긍정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지난 매일이 그저 부끄러움 뿐이다.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 책임의 무게가 버거워서, 혹은 그저 쉬워지기 위해.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나를 포함한 현재의 누군가들이 한 마디를 더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대의 주인공 혹은 그 주인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보다, 누구라도 한 마디를 더 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그 무대의 현재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으니.
여성의 문장을 남성에게 주지 않는 것. 이 하나가 그렇게 어렵나.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던 한편으로 정말 강렬했던 Chuengcharoensukyingชุติมณฑน์ จึงเจริญสุขยิ่ง의 대사톤. 망설이거나 끄는 부분 없는, 분명히 내려찍고 꼬리를 만들지 않는 단정적 언어. 태국어가 원래 이런 느낌인가 싶었는데 Hosuwanอิษยา ฮอสุวรรณ의 어투는 명백하게 Chuengcharoensukying과는 달라, 그 명료한 톤이 정말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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