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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하게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신이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내 좁은 식견이 닿지 않는 곳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예상치 못한 신.


무지는 이렇듯 신을 만들고. 지나치게 모자라기에 앎과 지식을 지향하는 나는 매일 매일 내 인지가 미치는 곳의 신을 죽여나가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만큼 잊혀졌기에 새로이 탄생하는 신도 있겠지만.      


6월부터는 짧게라도 하루 하나씩 포스팅을 하자고 생각했는데. 여러가지로 말미암아.


이따금은 나도 본다. 자주는 속내를, 더러는 겉모습만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로 인해 네가 영향 받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 


그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지금 이 시간이면 모든 사람들이 말들-당나귀들-염소들-염소들-벌레들-암탉들-고양이들-개들과 함께 깊이 잠들어 있겠지. 그런데 나만이 잠들지 못하고 들어 본 적도 없는 거리를 걷고 있구나.


사람의 시각의 지평이 얼마나 제한된 것이든간에, 그의 상상력은 경계선을 모르는 법이다. 자기 마을 밖으로 한 번도 나가 본적이 없는 한 남자라도 저 멀리 별나라까지 닿을 수 있는 상상의 세계 전부를 창조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여행을 하지 않고도 사람은 세계의 다른 쪽 끝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런 산보를 할 때마다 그는 눈앞에 아무런 동물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점점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가끔 그는 줄에 매어진 개 한 마리, 아니면 담장 곁으로 달려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지나치기도 했다. 이처럼 동물이 없는 낮선 풍경이 그를 우울하게 했다. 그는 그 동물들이 아예 없는 것인지 신비스럽게 감춰져 있는 것인지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이 그 거리들과 그가 건너온 쓰레기장 어딘가에 있으면서 그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했다.


-어쨌든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 WW를 봤음. 상영관 문제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편집이 상당히 튀고 컬러 선정이 ???였지만 퍼스트 어벤져를 돌이켜보게 만드는 흥미로운 영화라는 느낌은 있었음. 허나 여성 중심의 영화에 나오는 남성 케릭터는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에게 빠져들 - 페기의 엔딩이 마지막까지 로저스와의 얽힘이었던 것을 상기하면 -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새삼.


영화라는 단어의 어두에 '상업' 이라는 말을 붙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영화는 혼자만의 예술이 아님이 자명하고. 이 영화를 본다, 는 선택은 나의 것이며 보고 난 후의 무거움과 더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음 또한 나의 죄책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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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화, 물화되지 않은 소녀의 이야기. 


제가 성장물을 즐기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소년들이 자신이 이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과정을 성장이라 통칭한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부터였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기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신을 알아차린 후부터 비로소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는 소녀와 그 소녀의 이야기에 미친듯 매료될 수 밖에 없지요.


나이가 들면 세상이 모두 뜨겁거나 차갑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아? 어느 부분은 뜨겁고, 어느 부분은 또 차갑고. 하지만 우리 안의 부분들은 점점 무뎌져서 식거나 애매하게 달구어지지.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미지근한 애정을 숨기기 위해, 지나치게 식거나 쓸모없이 달구어진 것을 감추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열심히 뜨거운 열정과 차갑기 짝이 없는 행복을 연기하는 거야.

글쎄, 나로서는 그 연기를 경주하려는 노력을 진짜 애정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없겠는데.

일말의 애정이겠지. 


-서로의 미지근한 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