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는 부분도 덜 맞는 부분도 있다고 느꼈으나 그 어림과 젊음에서 오는 에너지가 흥미로워서.
냉장고 아래로 떨어져버린 유니버셜 스튜디오 싱가폴의 마그넷과 책장 뒤로 넘어간 다우니 섬유유연제가 약간은 신경쓰이는 계절.
뭔가 적극적으로 자라는 것이 보고싶다는 내 말에 몬스테라 한 줄기를 꺾어보낸 남자의 국제소포는 당연히 세관에서 제지당했으며; 수순대로 폐기되었다. 가끔, 정말 가끔 머리 좋음과 일상적 수준의 상식 사이를 가늠해볼 때가 있고.
어쩌다보니 과학철학을, 특히나 칼 포퍼를 많이 들여다보고 있는 여름.


잘 되길, 생각한다. 빌어줄 말을 더 떠올리지 못해 그저 잘 되길.
손목시계 아래 선득한 땀이 고이는 계절.
문득, 오랜 기억이 지층 아래에서 떠올라 불현듯 다가올 때가 있다. 아버지의 시신을 본 내가 죽음으로 그를 기억하고, 조부의 마지막을 보지못한 내가 영원한 삶으로 그를 떠올리듯. 언젠가 내가 조부에게 물었다. 내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조부는 내가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하지만 누구도 내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듯한- 지난 과거를 떠올릴때면 짓곤 하는 특유의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고, 역시나 그답게 직답을 피했다. 서너일 후, 내 잠자리를 정리해주던 조부가 평온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예쁜 사람이었다, 라고. 아무런 부연도 없는 단정적 어조에 나도 다른 것을 묻지 않았고, 한동안은 거리를 지나는 내 눈에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곤 했다. -예쁜 사람, 예쁜 사람.
내 미감은 조부와 책과 교육과 남자와 또래들에 의해 만들어져, 어떤 것들은 아주 유치하고 말도 안되게 장난스러우면서도 다른 어떤 것들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 콧대가 높아서. 이따금 나는 다른 이들의 미학을 험담하는 이들에 대한 이해가 힘들다. 누구에게나 같은 환경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손 닿는 것을 택하는 이들을 폄하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지.
나는 아직도 세계는 커녕 자신의 마을 바깥으로 발조차 내밀지 못하는 이들을 너무도 안다.
언제나 세계는 멋대로 참혹하고 멋대로 매혹적이라, 우리는 이토록의 공포과 경외를 안고 삶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우린 창조력도, 혁명도 없다. 그러나 장난은 친다. 장난이 일상의 혁명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변절은 계절같은 것이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없다. 왜냐면 법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류이치 사카모토다.

버티는 것도 지겨워 무작정 자리를 떠 평일 저녁 전시를 보러갔다 종료 며칠 전+무료 입장이라는 사실에 전시보다 사람이 더 많은 공간을 경험했고. 연착된 지하철로 순환 없이 매캐하리만큼 더운 승강장에서 싸움을 벌이는 이들을 구경하려 더 몰리는 양상을 보며 사람들은 타인의 재난에 관심이 많구나, 생각했다.
오래 전 맞춰두고 안 입는 한복을 나눔하겠다는 분이 있어 생각없이 신청했다 화사한 두루마기에 속치마까지 넘치는 한 상자를 받아 가을의 한복과 고궁 나들이를 떠올렸고. 겨울용 정장 블라우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또 나눔이 있어 보낸 메세지에 여름 옷에 푸딩, 간식, 음료수까지 또 잔뜩 챙겨받은 종이봉투를 들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커피 한잔을 사드리고 따릉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든 정말, 사람으로 살고, 사람으로 죽는다.

그 사이 장물전;도 관람했고. 굳이 움직이기 애매한 거리와 홍보 부족 탓이라 생각했지만 사람이 너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흥미로운 전시라 여겼기에.
좋다고 생각한 것은 죄다 컬렉션의 일부였기에 어쩌면 이렇게, 하는 한숨을.
가지지 못한 욕망이 폭발하던 시기는 이제 내게도 사그라들어, 가능하면 있는 것을 적당히 고치고 꿰매고 맞춰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새것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요구하면 좀 곤란해지고.
최근 산 것 중 가장 잘 쓰고 있는 것은 코코넛 오일. 여름이라 녹일 필요도 없어 머리카락이며 온 몸에 바르고 있는.
굳이라면 차라리 조금 더 걷고 심야버스를 타기에. 택시를 탄지 얼마나 되었나, 이따금은.
이 모든 절약은 미친듯 틀고 있는 에어컨과의 등가교환으로;_;
운동을 한 과거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데 -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회자되는 내 전학교는 정말 부담스럽기 짝이 없고 - . 군살이 늘고 있지만 어쨌든 잘 소화하고 적당히 자고 곳곳에 자리한 근육 덕분으로 아직도 몇킬로 쯤은 너끈히 뛸수 있는걸 생각하면 어쩌면 십 대에는 운동을 하는 것이 긴 생에 가장 효과적인 투자가 아닌가 더듬어 보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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