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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끝난 뒤 모님 댁에 실려 가 졸면서 졸면서 봤고.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고 미술이 예쁘고 배우들이 애썼더군요, 음악도 좋고.

정보를 다 아는 한층 우위의 신생아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세계 전이와 멀티버스가 뭐가 다른가 싶기도.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시기 영화 엄청 좋아합니다. 봄, 여름 그 사이의 박지윤씨를 무척 아끼는 것처럼 계절 별로 떠오르는 영화의 목록을 만들 수도 있고.

아이들을 어려워하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는 편으로 - 겉보기엔 믿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지만 - 귀기울여 듣고 해달라는 것만 해줘도 아이들은 잘 열고 잘 믿어준다. 아침의 어스름이 남아있는 공간에서 식사를 주겠다며 움직이는 아이의 서툴고 익숙한 동작을 보며 생각했다.

이 부산함을 두고 보는 신뢰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드는구나.

여테까지 너랑 있으면서 네가 운동했구나 느낀 적이 딱 두 번 있었어. 하나는 달리면서 팔꿈치 안 펴는 거랑 다른 하나는 이거 하고싶은데, 하다 어느 순간 보면 진짜 하고 있는거.

외모에 대한 알수 없는 분위기라기보단 아무 생각이 없을 때가 많아 늘 생각이 많은 이들이 그를 잘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의 Earth-42 어머니 눈이 녹색이네. 원 세계의 연갈색 눈동자가 너무도 아름다워 알아보게 된.

어쩌다 이야기가 나올 때면 - 이 나이에 이르러서도 - 사람들이 대견한듯 말하는 것에 혼자 웃는다. 어쩜, 삐뚤어지지도 않고 잘 자랐네. 상처입거나 흔들리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듯, 당연한 주양육자들에게 대한 미움이 없는 것이 기이하다는 듯. 내 모든 상처와 흉터를 숨기고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웃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 모든 과거들이 감춰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때가 있다.

어떤 연륜에도 부모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 이리도 많다는 사실도.

-그리고 내일 아침이 기대되었다. 내일 아침에는 타이머로 연결된 식물등이 팟 하고 켜질 것이고, 나는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잠에서 깨어나 이 식물들을 하나하나 만질 것이다. 살살. 어떤 것은 살짝 쥐어보듯이 만질 것이고, 어떤 것은 손가락 끝으로 쓱쓱 쓰다듬어볼 것이다. 어떤 것은 엄지와 검지 사이에 넣고 슬쩍 비비듯이 만질 것이고, 어떤 것은 검지손가락이 지문이 있는 곳으로 톡톡 두드려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아침일 것이다. 호사에 호사를 더하는 아침일 것이다. 사치와 호사, 나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 좋다.

외국 동료와 택시를 타다 오랜만에 듣게 된 인순이씨의 노래에 동료가 제목을 물어서,

갈매기의 꿈인가?
바크 소설 아냐?
뭐더라... Cephalopoda 아니면 Aves의 꿈이야.
거론한 둘 거리 너무 먼 것 같은데.

하고 집에 와서야 거위의 꿈인걸 알게 되어 슬쩍 웃고.

그러고보니 얼마 전엔 외근을 나갔다 급한 전화를 받고 좀 당황했던. 다른 국적의 손님이 소기의 목적을 지닌 채 방문을 했고, 우리 팀에 그 주제를 아는 팀원도 심지어 그 국적의 팀원도 있었지만 그 이야기의 언어를 한국어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 빨리 들어와줬으면 좋겠다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오래 어이없어한 기억도.

작업에 대한 흥미가 나날이 떨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