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아끼는 사람의 이미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 여전히 관찰자로 남는 시선이 마음에 들어서 - 그럼에도 어쩌면 이렇게까지, 자주 생각합니다.
빙판이 남아있던 길을 자전거로 지나다 크게 넘어지며 어쨌든 낙법은 취했는데. 하루이틀은 팔꿈치가 못견디게 저리다 사흘 전부터는 일어날 때마다 느껴지는 허리 통증에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낙법도 했는데! 라는 변명에서 느껴지는 나이듦의 기조랄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내가 운동을 한 과거에 대해 자부심이 크구나, 하고.
그러고보니 언젠가 코치로 일하는 오랜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우리는 몸으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 많은 운동광이 그런 것처럼 -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타인과의 육체적 교류나 얽힘에서 오는 열망에 휩쓸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의 자존감을 채우진 못하리라고.
어머니가 말한다. 사는 게 정 힘들 때는 옷장 정리를 해라. 그러면 근심이 손으로 빠져나가고 머리가 맑아질 게다.
어머니는 그런 말을 할 만하다. 어머니 집에는 옷장이 다섯 개 있고 반닫이도 다섯 개나 된다. 사흘 연달아 옷장과 반닫이를 치워도 여전히 치울 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 내 가장 격렬한 질투를 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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