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럼에도.
마치 잃어버린 기억이라도 난 것처럼.
머릿결이 좋은 사람을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가슴이 뛰는건 첫사랑의 영향일까.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해보지 못했던, 귓바퀴를 넘어 스륵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나도 모르게 넘겨주고 쑥스럽게 웃었지. 자꾸만 말라오는 윗 입술을 힘겹게 이로 누르며.
고시원이었나. 신새벽 책장에 깔려 갈비뼈가 부러진 경험이 있는 나는 손 닿는 범위 내 책장이나 떨어질 위험이 있는 선반 등을 놓지 않는데. 문득 발견한 사진에서 그럴 가능성이 높은 뭔가를 발견하면 내가 불안해진다.
다시 눈을 감고, 뜨고. 숨을 쉬기.
적은 금액으로 가장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기억은 꽃. 그 향기와 화사함, 일시일지라도 공간을 달라지게 만드는. 쓰레기 처리의 문제로 지금은 나라에서 관리해주는 꽃만 보지만.
나라고 매번 옳거나 공정할까. 나 자신의 추함과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관심받고자 하는 행동을 알고 자제하려, 정말 간신히.
경제활동은 각자 하고 있다보니 남자의 진로에 대해 특별히 고민한적도 그렇구나 힘네, 정도가 반응의 전부였고 - 석사를 정말 너무 오래해서 박사를 재촉하게 만든 약간의 미안함은 있음 - . 말을 조리있게 하는 편임에도 법정에 가본 일이 거의 없고 그쪽 업계치고는 연봉이 낮으며 별도 자격증을 따야하고 일이 많다, 는 자리를 택한 것에 대한 의문만 잔잔했는데. 얼마 전 일 하나를 도우며 그 궁금증이 풀렸다. 업무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조사와 추리가 기반이라 일이 재밌어; 보험조사관과 얼핏 비슷한데 분야가 교묘하고 전문적이라 확실하게 흑백을 가릴 수 있고 더 손댈 일 없이 결과가 깨끗히 마무리됨. 이런 종류도 드물지, 와.
이제 모두들 과거를 회자하는 나이가 되었고.
각각의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많았던 그들의 세계에서 역시나 내 다른 이름은 그, 여대 다니던 애.
카페에 잘 가지 않고 외식도 드물고 당근에서 나눔을 받고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을 가고 KOFA를 가는 내게 그럼 너는 어디에 돈을 쓰니, 하고. 빚을 갚고 공간의 문제로 요즘은 전자책을 많이 사고 이따금 남자를 만나러 가고 얼마전 어느 사이트에서 어느 책의 초판과 오래된 빈티지 가방을 발견해서 바로 샀어요. 세금 나올듯, 이라는 대답에 당신이 웃고.
아휴 하기 싫다, 한숨 뒤 다시 책상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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