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

나는 자주 그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언제든 내 단어는 나의 이상에 미달하고.

십여 년을 봐도 여전히 설레고 처음처럼 두근거리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내 행운이라. 좋은 일 나쁜 일 신기한 일 흥미로운 일 모두 가감없이 전달해주시는 그 가볍고 산뜻한 태도가 감사하여, 여덟 시간이 훌쩍 지날 만큼 기억과 문장을 나눴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미네랄 향과 감칠맛이 강하던 와인, 입 속에서 부드럽게 녹아들던 샤퀴테리와 병어, 백합, 소스, 호박 알갱이가 한 웅큼 씹히던 포카치아, 럼 내음과 촉촉한 레이즌의 조합이 근사했던 파운드 케이크, 버터향이 끝내주던 마들렌, 초코의 농도가 짙어 포장을 열자마자 다 먹어버린 어느 가게의 쿠키.

랩다이어의 광채가 황홀했던 스퀘어 디자인의 반지와 오팔, 사파이어, 기하학 디자인의 랩 카프탄, 다홍의 스크런치. 기가 막힌 진녹색 치파오와 둥근 칼라의 매끈한 코트, 투명한 옥반지와 골든 가드링.

쏟아지는 듯한 감각의 호사에 한 시간은 함께, 나머지 한 시간은 고즈넉한 반포 거리를 걸으며 계속 노래를 불렀다.

Wouldn't it be nice if we were older?
Then we wouldn't have to wait so long
And wouldn't it be nice to live together
In the kind of world where we belong?
You know it's gonna make it that much better
When we can say goodnight and stay together

Wouldn't it be nice if we could wake up
In the morning when the day is new?
And after having spent the day together
Hold each other close the whole night through
Happy times together we've been spending
I wish that every kiss was never ending
Oh, wouldn't it be nice?

Goodnight, my baby
Sleep tight, my baby
Goodnight, my baby
Sleep tight, my baby
Goodnight, my baby
Sleep tight, my baby

즐거운 시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며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421.

정신없이 찾았던 너의 얼굴, 그 입술.

다행히 건강과 몸무게는 많이 돌아왔고. 새로운 일과 사람들은 나를 약간 혼란스럽게 하나 나이가 들어 무딘 감각으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늘 그렇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

뭔가 견딜 수 없어질 때면 당근에 저렴하게 올라온 티켓을 사서 아무 영화를 보고, 다른 차원에서 빠져나온 듯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다. 누군가의 상상 속 무른 세계와는 달리 발 아래 나의 세상은 여전히 단단하고.

경기가 확실히 안좋아졌다고 느낀 것이 옷 관련 일을 하던 지인들 대부분이 업을 접어서. 사이즈든 재고든 뭐든 보내주는 대로 착용하고 만날 때마다 몇 끼 식사로 대접하던 내게 마지막 상품을 보내며 이건 네 생각에 팔지 않았어, 한 발짝 늦은 메세지에 파워 숄더, 금장 단추가 재미있는 90년대 빈티지 자켓을 펼쳐본다. 귀한 분들 만남에 입어야지 라는 생각과 이것도 민폐인가 하는 자기검열을 매양 함께 떠올리고.

또래와 발 맞춘 적이 거의 없어 나는 늘 사무든 화장실 청소든 공장이든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럭저럭 살것이라 벅찬 희망을 갖고.

얼마전 처음 방문한 영화관에 초로의 노인분이 홀로 덩그러니 야간 시간을 담당하고 계셨다. 피로가 짙은 얼굴에 컬러감이 짙은 유니폼이 기묘한 부조화라 나는 또 그 모습을 떠올리며 이유없는 상념에 잠기고.

어떤 것을 구매하고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기업과 대표에 대한 소속감과 성취감, 상대적 우위를 함께 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더하여 기회가 있어도 그를 보유하지 않는 이들을 탓하는 모습조차 나는 경이로울만치 이해가 힘들어서.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나무들까지도 알고 있네

420.

너를 사랑하고 싶어 자주 무릎을 꿇었고.

나도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과 소속감없음에 대한 불안은 심하지만 스스로를 동정하는 타입은 또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이나 피로를 쏟는 걸 귀찮아하는 회피+성급한 결정형으로 혼자 오래 고민하고 정리하자 싶으면 빨리 결정하는 편이었으나 나이가 들고서는 결론짓지 않는 것들이 많아짐. 모든 것들을 그저 내버려둔채 지켜보고. 다만 한 가지, 혈연이나 관계로 연관지어지지 않은 타인들의 걱정과 마음을 위해 내 삶을 부수지는 말아야겠다, 여겼던 것이 어쨌든 삶의 이정이 되었다. 장학금이 필요했지만 최대한 높은 학교에 지원했고 가장 큰 회사에 원서를 넣었고 되든 안되든 여러 시험을 치렀고.

그와 더불어 십 대 초중반에 내가 이룰 수 있는 모든 영화와 호사를 누려봤기에 최고를 아는 것이 비교우위적으로 힘이 되었다, 우습게도.

저자가 무심코 배제해 의미심장한 시행이 상당히 생략된 그의 시(자전적인 작품으로 보기엔 너무나 알수 없고 말을 아끼고 있다) 같은 작품이 갖는 인간적인 사실성은 저자의 주변 환경, 성향 등의 사실성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오직 나의 주석만이 이 사실성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단언에 나의 친애하는 시인은 어쩌면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나, 좋든 나쁘든 최후의 말을 하는 이는 바로 주석자다.

-창작의 조물주가 사라진 뒤 권력을 쥐는 것은 바로 읽은 자와 이후 발언하는 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