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계엄이 있을때 여의도로 뛰어나갔고 다음날은 광화문, 그 다음날은 열한시까지 야근을 하고 꾸벅꾸벅 졸며 막차를 타고 인천공항, 일본을 잠시 거쳐 남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제는 남과 북을 거론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제게 한국은 어떠냐 물으며 걱정섞인 인사와 잡담을 나누고 누군가는 진지하게 망명을 권유하기도 하네요.

겪지 않으면 쓰지 못하는 저는 - 창작의 자질이 기본적으로 미흡한 - 언제나 현장에 있으려했고 가장 평화로운 때 사라짐을 꿈꿨던 만큼 감히 저의 어떪으로 약간이나마의 것들이 나아지길 항상 바라왔습니다. 절망과 피로뿐이었던 근간, 우리가 앞서겠다며 젊음은 뒤에 있으라 등을 보이던 연륜과 출근해야하는 회사원들을 모아 욕실을 내준 분, 샤워를 하는 사이 아침 식사를 챙겨주신 분, 지하철역까지 차를 태워주시며 내일은 나을것이라 고요한 위로를 건내주신, 이상하리만큼 피로가 없었던 그 밝고 추웠던 아침을 저는 오래 기억할 작정입니다.

출발 네시간 전까지 가는것이 맞나 망설였던 비행이었지만 어쨌든 잘 도착한 저는 이곳에서 목소리를 내보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시국이지만 안녕하시길, 저도 열심히 안녕하겠습니다.

당신의 얼굴, 나를 자주 허물어뜨리는 그 미소.

424.

익숙한 것의 다른 관점.

어느덧 마지막 달이.

요즘 새로운 일과 공부와 덕질에 이리저리 휘둘리느라 이곳을 신경 쓸 겨를이 없네요. 저는 여전히 욕을 하며 일을 하고 가끔 웃고 동료들과 카레를 먹고 주에 두 권쯤 책을 읽고 자주 영화를 보고 늦은 저녁의 전시회를 감상하고 계절성 빵과 간식들에 간간히 눈을 두다 터진 자국을 얼기설기 꿰맨 장갑을 끼고 길게 자전거를 타곤 합니다.

눈이 많이 내린 얼마 전 아침에는 올 겨울 처음으로 뜨거운 커피를 산 기념으로 입김과 단풍과 나무의 사진을 함께 찍기도 했네요.

멀든, 가깝든.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분들의 안녕을 소원하며. 춥지 않고 바쁘지 않으며 아프지 않은 연말 되시길 바랄게요. 저도 그럴테니까요!

423.

이 하남자 영화가 재개봉한다니.

주말의 기억이 내내 좋아서, 그 기억으로 출장과 행사가 있는 이 한 주를 버틴다.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업무를 하다보니. 재미와 짜증과 공포와 잘 될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와 통달의 감각이 함께 밀려오는 것이. 이래서 한 회사에 오래 몸담은 사람들 특유의 게으름, 그에 더한 체념과 달관이 있구나 싶고.

전문 연구자들끼리 피어리뷰를 해도 개판이 나는데 왜 사람들은 검증되지 않는 이들이 알수 없는 채널을 통해 논하는 분석과 주장을 신처럼 따를까. 이따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타당한 의견보다 어쨌든의 확신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