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사랑이 있나요, 그 어느 곳에도?

여러가지 일로 몫돈을 만들 목적이 약간 있었는데. 오늘 다녀온 치과에서 지극히 염려되는 표정과 생애 내내 이갈이 습관으로 이백만 원이라는 치료 내용을 듣고 바로 갖고 싶었던 물건 하나를 주문했다. 이제 나 또한 생활과 일상과 유전이 육체에 새긴 흔적을 돈으로 갚는 나이가 되었네, 하고.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점점 일은 지치고, 의욕은 저물고, 오로지 빚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서른 전에 통장에 십만 원이 있었던 때가 드문 것처럼 끊임없이 일했고 적게 벌었고 많이도 뜯겼고 여기저기 썼다. 그나마 그 이후 돈을 모을 수 있게 된 이유는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되는 상황과 주거환경을 가리지 않는 천성, 일주일 동안 같은 것을 먹어도 불평하지 않는 기질, 이야기만 들어도 혼자 배불러하는 성격에 기인했다. 각자의 생각과 각자의 생활이 있을 테고 다들 알아서 어떻게든, 청하지 않은 도움에 굳이 나서거나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이와 동일하다. 존나게 남이사 아닌가.

여전히 내가 귀를 기울이는 많은 것들은 남들이 즐거운 소비를 한 이야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야기, 즐거운 만남을 가진 이야기 등으로, 드러냈기에 평가할 수 있다는 마음을 낮추려 늘 노력한다. 모두 쓰지 않고 굳이 보여주지 않는, 그럼에도 어느 일정 부분을 잘 연마해 가장 예쁘게 포장하여 내게 보여주는 그 시간과 노력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싶어서.

덕세계 가끔 정말 모르겠음으로. 나의 경애가 향하는 곳이 두루두루 잘 지내고 많은 사랑을 받으면 너무나 좋지 않나? 관계에 있어 원앤온리가 되는 것이 나는 가장 두려워서.

나는 돈 벌고 너는 돈 쓰고, 라는 어느 대사를 언제나 마음에 새기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바란다면 나는 그 사람이 정말 손가락도 들지 않아도 될만큼 노력할 텐데. 지금도 몇천쯤 사라진 어느 애정에 별 생각이 없는 만큼 나는 매번 깊숙히, 빨리도 젖어들곤 하여.

유월 중순. 미친듯 더운데 매미가 울지 않아 섬뜩했다.

C'est très important pour moi. Suis-je votre cuisinière ou... suis-je votre femme?
Mon cuisinier.
Merci.

아름답고 추했고 또 아름답고 지금이라는 시대를 잊을 만큼 어마어마했던.

이민자 혹은 2세대가 만든 무엇보다 원형에 가까운 제국주의적 복제를 바라볼 때면 - 이안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나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같은 - 느껴지는 기이한 향수가 있음.

私の髪に 口づけをして
かわいいやつと私に言った
なのにあなたは京都へ行くの
京都の町は それほどいいの
この私の 愛よりも
静かによりそい やさしく見つめ
愛する人と私を呼んだ
なのにあなたは京都へ行くの
京都の町は それほどいいの
この私の 愛よりも
燃える腕で だきしめて
とわの愛を私に誓った
なのにあなたは京都へ行くの
京都の町は それほどいいの
この私の 愛よりも
この私の 愛よりも

は로 끝나던 조부의 京言葉를 오래 생각했지.

412.

내 세계에는 없는, 어떤.

여름에는 이디스 워튼을.

더위로 타들어간 뒷목을 스치는 서늘한 옷깃의 감각. 삼백육십오일 트레이닝복을 걸쳤기에 제대로 교복을 입어본 기억은 드물지만 그럼에도 그 교복을 좋아했던 이유.

너는 조용히 왔다. 큰 몬스테라와 작은 바질을 가지고. 살아있는 생물을 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그 지친 얼굴 위로 흘릴 수는 없어서, 실외기 위에 화분 두개를 올리고 물을 주고 반짝반짝 선명한 해가 묻은 잎사귀를 오래 바라봤다. 네가 죽은듯 자는 동안. 너는 잘 먹고, 잘 잤다. 끼니마다 밥과 빵과 스파게티를 먹고 복숭아를 먹고 오렌지를 까먹고 오래되어 형태가 찌그러진 방울토마토를 나와 나눠먹었다. 서랍장 하나가 고장나 자주 당근을 뒤지다 거의 매일 겉옷을 걸치는 내게 조용히 물었다. 같이 가도 돼? 따릉이 초대권을 보내고 비틀거리는 네 자전거의 뒤를 따르고 부품을 확인하고 낯선 이름 앞에 입금을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네게 돌아오는 내게 너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두시간쯤 자전거를 타고 날벌레를 열마리쯤 먹고 이제는 져가는 장미를 함께 보고 먼지와 꽃가루로 엉망이된 몸을 교대로 씻어내고. 고요하고, 고요하고, 조용한 나날. 피와 시체와 주술과 욕설이 뒤섞인 드라마를 내내 틀어놓은 내게 너는 여전히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거 틀까? 라는 내 물음에 아니. 너 보던거 봐. 라는 그 꺼질듯한 대답이. 있는듯, 없는듯. 아무런 존재감도 그 어떤 열망도 없이 너는 있다, 갔다. 지는 해가 못견디게 뜨거웠던 날, 대문을 열고 들어와 가지런히 정리된 침구에서 너의 부재를 읽은 나는 샤워를 하고 늘 보던 드라마를 혼자 보고 같이 먹었던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고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를 했다. 너와 함께 울퉁불퉁 살점을 잔뜩 깎아냈던 복숭아 껍질을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며 기도처럼 되내었다. 네가 내 집에서처럼 어디서든 잘 자고 잘 먹기를. 네가 소중히 데려온 몬스테라와 바질처럼,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411.

어떤 상상은 입밖으로 내뱉지 않는다면 죄가 되지 않을 것 같고.

나날이 지치기만 하는 것 같아.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로 마음을 달래다보니 이젠 그 작고 사소한 것들이 거대함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그래야 사람이 살지, 내가 살지. 라는 나즈막한 문장을 자주 떠올린다.

주변 모두 훌쩍이는데 나만 건조하여 약간 당황. 좋아할 수 밖에 없도록 운명지어진 상하관계 내가 너무 꺼려하고. Dog, 라 귀엽게 동물화되긴 했지만 그 모습과 양상이 너무나 그 나이대의 중년 남성이어서.

저는 호쪽으로.

많은 분들이 일컬어주셨듯 화면 내외의 사운드가 무척 좋고 연출 - 감독 - 이 정말 계산을 잘 한 영화입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말할 것 없이 모든 구석이 아주 아주 영리한 영화. 기술이나 CG의 변화는 늘 저의 흥미를 잣지만 이런 단계 너머의 발전을 목도하게 되면 실로 전율하게 됩니다. 언제나 저는 이런 영화를 기다려왔습니다. 어떤 거창한 것, 특별나게 위대한 것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때려부수는.

크레딧과 올라가는 사운드트랙이 굉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