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연모.
미드소마를 보다 영화관을 나온 경험이 있는 나는 이제 스스로 견딜수 있는 잔혹의 강도를 잘 알고 있어서, 세평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마음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할 때가 있다.
아침잠이 늘어, 알람을 열다섯 개쯤 맞추고 그 알람을 끄기 위해 만들어진 캡처화면에 웃는 출근길.
내게 학벌이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버틸수 있는, 그럴싸한 입학장보다는 이 시간을 버텼다는 졸업증서가 중요했던. 머리와 지능 또한 알 수 없는 부모보다 환경이 챙긴 체력과 근육, 몰입해 앉을 수 있는 집중력에 많이도 기댔었고.
그래서 나이가 조금 더 들고 어린 층의 수가 얇아지면 그 중요성이 더 낮아질것이라 생각하여 요즘의 세태가 약간 당황스럽고.
학벌이 적절한 운과 시기, 노력할 수 있었던 당신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처럼 당신의 미래와 일대일로 등가교환되기엔 힘들어서. 어느 쪽에도 과한 무게를 싣지 않았으면.
꼰대의 발언이지만 과거의 무언가가 미래의 나를 보장해주는 것은 체력 - 건강이 아님 - 뿐인듯.
교수자의 말랑함은 때로 나를 웃게, 자주 나를 짜증나게 하고.




고요한 얼굴과 그 낮은 언어들이 미친듯 좋았으나 조금 더 나이든 배우가 필요했으리란 내 의견은 변함없고. 여전히 설정 외 대사와 행동 연출 장면 연결 모두 게으르기 짝이 없는 영상 속에서 그 얼굴이, 얼굴들이.




-그렇구나, 그저 배부른 마음으로.
장내가 어두워 몇번이나 발을 헛디뎠고, 설명조차 읽을 수 없음에 그저 그 광채와 휘황만을 오래 들여다보며.
여전히 아주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나면 모든 식욕이 사라지고.
소유욕과 물욕이 일렁일 때에도 장엄한 것들을 보면 마음이 잔잔해진다. 이런 것들이 세상에 있는데, 왜 내가 미달하는 모자람을 굳이.
긴 연휴, 전 이틀쯤 출근을 하고 하루 교육을 받고 밀린 책을 읽고 홉스봄의 저서 하나를 원문으로 볼 생각으로 몇몇 전시를 기억해두었습니다. 제가 알고 떠오르는 분들 모두 배부르게 즐거운 연휴 되세요.




마음껏 빚을 져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던.
크게 미각에 휘둘리진 않지만 제육과 튀김을 좋아하고 자주 화장실을 가고 칼로리 소모가 빠르고 근육이 잘 생기고 살이 빠지기보다는 아랫배에 모이는, 나를 두고 어느 수련의가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남자처럼 먹고 남자처럼 소비하네요? 그들이 체중계에 관심없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서툰 변명을 덧붙일 때마다 그래서 네가 선출이구나, 라는 단정에 그저 웃고.
나는 이제 물러설 수도 없는 어른이 되어서.
토하면서 슈니츨러를 읽고 입센을 음악과 편곡으로 해석하다 하반기 즈음의 메켈레와 임윤찬을 고민하며 주미 강이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내 무지를 두려워하는지.
책에서 아무것도 얻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오래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가 그곳에 있어서, 그리고 당신의 실제를 나는 조금쯤은 부러워했을 겁니다.
나는 언제나 기약없는 감정을 받기보다는 내가 아는 무언가를 주고싶어서. 그래서 차가운 길가에 함께 앉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목소리를 높여 환호하고, 얼어붙은 손으로 박수를 치고.
-나는 절반쯤은 개다. 나는 절반쯤은 풀꽃이고. 나는 절반쯤은 비 올 때 타는 택시. 나는 절반쯤은 소음을 못 막는 창문이다. 나는 절반쯤은 커튼이며. 나는 절반쯤은 아무도 불지 않은 은빛 호각. 나는 절반쯤은 벽. 나는 절반쯤은 휴지다. 절반쯤 쓴 휴지다. 네 눈물을 닦느라 절반을 써버렸다.
젊고 사라진, 어쩌면 그 때문에, 혹은 그로 인해 선명한 글들을 읽는다.



세상에 이런 웃음이, 이런 눈물이 고이는 얼굴이 있었구나.
약간은 덜 화를 내고 미움의 강도를 낮추려하는 새해. 이제 절반쯤 남자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땅의 입국처는 나를 아주 길게 붙잡았고 이민법을 전공했다는 남자의 동기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로 바뀔지 알지? 불편해지지 않으려면 가능한 빨리 법적 절차를 밟아, 라 강하게 이야기했다. 남자는 날 보며 희미하게 웃었고 나는 차창만 바라보며 그 대화를 못 알아들은 척 했다.
짧은 일주일, 평균보다 약간, 아주 약간 높다는 남자의 연봉에 주거 혜택을 받은 집은 나쁘지 않았지만 외식은 비쌌고 이따금의 거리는 버려진 주사기가 흥건했다. 장을 보고 산책을 하고 미술관과 도서관을 다니며 드물게 영화를 보는, 대부분 모자를 쓰고 맨 얼굴에 마스크를 한 내 얼굴에 많은 사람들이 미스, 미스터? 를 물었고 나는 짧게 눈으로 웃었다. 니하오는 드물었지만 굳이 어깨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가슴이 막혀 한참 숨을 몰아쉬다 다시 바닥을 보며 걷곤 했다. 말간 해에 말을 할때마다 부서지는 새하얀 입김이 기묘하게 몽롱하여, 자주 선 자리를 잊고 지도앱을 들여다보았던,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근 것마냥 천천히 불어가던 나날.
다시 돌아오는 길. 일본에서 아주 좋아하는 분들께 드릴 것들만으로 채워진 에코백을 가지고 바로 시위에 나갔고. 핫팩 자국으로 발갛게 태워진 피부를 씻어내리다 내일은 뭔가 바뀌길, 가만가만 중얼거리기도 한다.
지금 나는 예술을 하지 않지만, 예술을 하는 이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의심하고 깨부수며 돌을 던져야 한다는 학교의 교육을 나라의 돈으로 받았기에. 내 부채는 움직이는 것으로 갚을 수 밖에 없고.
모처의 공론화나 나와서 개인의 의사를 터놓는 것이 겸연쩍다는 지인의 말에 왜? 대꾸하니 단 둘이서 외진 곳에서 들어야하는 은밀한 이야기를 공개된 장소에서 듣는 부끄러움을 이야기하여, 음.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 난 이제 잘 이야기하고, 잘 닫고, 자주 그저 잊는다.
많은 것들을 여권 탓으로 돌린 나는 빠른 재발급을 위해 보정도 조명도 없는 지하철 즉석 사진기를 골랐고. 주름지고 피로한 여권 속 내 얼굴이 생각 외로 마음에 들어 약간 놀랐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이렇게 조용히 나이가 들었네, 하고.
-가능한 많은 이들이 춥지 않은 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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