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

정제된 아름다움만이 가득한 세계가 좋기도, 슬프기도.

간신히 책을 두권쯤 읽었고 나흘간 출근에 너무나 업무가 싫어 책상 앞에서 두 시간쯤 딴짓을 했고 연휴기간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결국 자리를 고쳐앉아 거나한 답장을 써내려가다 이 모든 것들의 효용을 따지는 나 스스로에게 질려버리고.

내겐 작은 집도, 직장이 없어도 두 달쯤 버틸수 있는 돈도, 이제는 다른 이의 반짝거림을 봐도 갖고싶다거나 먹고싶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연륜이 있으나. 그와 비슷하거나 어린 또래들은 노출된 순간 엄청난 박탈감을 받겠네, 생각에 더더욱 인증 문화를 곱씹어보게 된다. 이토록 정보의 시대에 완벽하지 않다 여기기에 더더욱 교류하지 못하고 문을 닫은 이들을, 무언가를 보장할 수 있는 부모도 그럴듯한 기반도 오로지 부족한 노력과 그럴싸한 미학만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442.

우리는 그곳에 무엇이 있었다고 착각하게 될까요.

피아노도 독서도 달리기도 자전거도 타지 못하고 있는 나날. 매일 저녁 30분씩 쪽잠을 자고 새벽 두세시까지 일을 하고 다시 다음날 여덟시 출근을 하여 지리멸렬한 회의를 하고. 한달 째 이어진 출근 이후 처음으로 알람을 맞추고 자지 않았던 어느 공휴일, 자료를 요청하는 타 부서의 전화에 잠을 깨어 생각했다. 여기가 나와 이 직장의 선이구나.

관심없는 사람들을 만나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고 흥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맞춰주고. 그냥 듣기만 하라는 이야기에 묵묵한 표정을 짓다, 그를 위한 지출이 전 달 총 소비의 두 배를 넘어선 순간 생각했다. 지난 달에는 책을 한 번도 빌리지 못해서, 올해 도서관 우수회원이 되기는 힘들겠네. 그게 가장 싫었다.

나를 성장시키지도, 내 무릎을 꺾이게 만들지도 못하는. 그저 무의미한 시간들.

내가 아는 물에 잠기고싶은 마음만 간절한 나날. 건강히, 행복하실까요? 저는 조금이나마 상황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긴 연휴 평안히 보내세요, 저도 그럴테니까요.

441.

누군가의 추천에 또 어이없을 만큼 빠져있는 중.

어떻게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십분이라도 본다. 그리고 장면장면을 복기하며 조용히 되내인다. 각자 다른 넷의 삶이 그렇듯 나 또한 안되면 말고, 내게는 그래도 선택지가 있다.

붉은 흙속에 손을 묻고 마치 무덤같다는 생각을 떠올렸지. 서늘한 습기와 두텁지만 기분나쁘지 않은 무게감 속에 하릴없이 손가락을 움찔거렸던 때.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누군가를 상상하던 나를 근간 자주 떠올리는 것은 이제 내가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보다 높은 학위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을 스칠 때마다 굳이 변명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하나 눌러 앉힌다. 대가를 장담할수 없는 긴 공부에 시간에 투자할만한 여유가 없었네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