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

매끈한.

AI와 목소리 계약을 했다는 어느 배우들의 뉴스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현실세계의 불순물은 평평하고 반듯하게 처리된 가공 아래서 소리도 없이 썩어가겠다고.

내 비루함이 부끄러운 적도, 딱히 자랑스러운 적도 없지만 이제는 그 과거 이야기를 내뱉는 것조차 누추한 나이가 되어.

더 말을 줄이자, 매일 생각한다.

모두의 선의에 기대어 간신히 숨을 쉰다.

이갈이로 닳아버린 어금니에 두어번 보톡스를 맞은 기억이 있다. 도저히 효과가 없어 간격을 줄이면 좀 더 나을까요? 내 물음에 담당의가 답했다. 볼패임이 생길 겁니다. 의아한 내가 볼패임은 상관없는데요, 대꾸하자 돌아왔던 그 난처한 얼굴. 나이가 들어 생긴 눈자위의 꺼짐도, 이마의 주름도, 흐릿해진 인상도. 내가 원해서 가진 것이 아니었기에 깊은 관심을 둔 적 없는 것들에 훈수를 두거나 충고를 하는 사람들을 늘 이해할수 없었고, 내 시간이 쌓인 이후에야 비로소 정립하게 된 내 얼굴과 내 몸을 간신히 신경쓰는 나날.

많은 것들에게서 도망쳤기에 그를 만류하는 갖가지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제는 그만두겠다는 이야기에 나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흥미롭기도, 두렵기도. 여기를 떠나 어디를 가겠냐는 이야기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멋대로의 대답을 남기며 혼자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이, 약간은 쌓아올렸지만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이 상태가 항상 저의 전부였어서. 사라짐도 버림도 잃음도 포기함도 언제나 내 책임과 선택이었기에 나는 미래를 준비한 적 없었노라고. 언제나 내 뜻으로 삶을 놓을 수 있는 자유 아래 나는 이 모든 행과 불행의 현재를 견뎌왔었다고.

444.

집에 오자마자 중고 매물을 뒤져 원래 값보다 비싼 DVD를 구매해 여덟번쯤 돌려보고 배경처럼 틀어놓았다. 최고가 아니어도, 서로가 있음으로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순간을 지나는 청춘들.

이제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연배의 나는 젊은 감각이나 유행을 따라가려는 마음이 그다지 없고. 조언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그들과 어울릴 생각도 별반 없다. 내 불편함만큼 그들이 감내해야할 것들을 생각하면 더더욱이. 숨도 못 쉴만큼 바쁘기도 하고.

이따금 감각을 알고 있음을 뽐내려는 사람을 보면 약간 의아하기는 하지. 그래서 누구의 인정을 받고 싶은 건가요, 그들? 아니면 눈앞의 우리?

번호나 소셜미디어를 알려달라는 요청이나 타인에게 자신의 뭔가에 대한 문의를 들었음이 나에 대한 객관적 평가라 여겨지는 세태를 볼 때면 더더욱이.

이런 투덜거림을 생각하는 것조차 나이듦의 증거라 드물게 웃는다. 정말 흐리게 살고 싶다, 누구도 나를 모른채 그저 희미하게.

443.

정제된 아름다움만이 가득한 세계가 좋기도, 슬프기도.

간신히 책을 두권쯤 읽었고 나흘간 출근에 너무나 업무가 싫어 책상 앞에서 두 시간쯤 딴짓을 했고 연휴기간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결국 자리를 고쳐앉아 거나한 답장을 써내려가다 이 모든 것들의 효용을 따지는 나 스스로에게 질려버리고.

내겐 작은 집도, 직장이 없어도 두 달쯤 버틸수 있는 돈도, 이제는 다른 이의 반짝거림을 봐도 갖고싶다거나 먹고싶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연륜이 있으나. 그와 비슷하거나 어린 또래들은 노출된 순간 엄청난 박탈감을 받겠네, 생각에 더더욱 인증 문화를 곱씹어보게 된다. 이토록 정보의 시대에 완벽하지 않다 여기기에 더더욱 교류하지 못하고 문을 닫은 이들을, 무언가를 보장할 수 있는 부모도 그럴듯한 기반도 오로지 부족한 노력과 그럴싸한 미학만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