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

-어떤 나날은 우리를 깊게도 울게 하고.

일상은 단조롭다. 일하고 도서관을 가고 책을 읽고 분리수거를 하고 이따금 영화를 보고. 길게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남자와 통화를 하고 내일 할 일 혹은 오늘 한 말을 곱씹다 일본어와 영어 방송을 조금 보다 잠이 든다. 가끔은, 가끔은 약간 아는 언어의 팬픽을 읽으며 그 의미를 유추해보다 꾸벅꾸벅 졸고.

많은 글을 읽었지만 이제는 문장을 기억하기보다는 흐릿한 이미지만 마음에 새기고. 매섭게 싸우는 두 기관을 오가며 어느 쪽도 서로를 이해할 생각없이 혀만 차대는 둘의 사정을 이제는 알아차린 나만 반쯤 한심한, 나머지 반쯤은 맥빠진 기분으로.

양쪽 어디도 반기지 않으나 다만 자존심으로 누구도 포기하지 못해 일렁이는 표면에 손을 댄 나만 난감하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오래 살아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나, 하는 철없는 마음만.

사람이, 사랑을.

429.

-오랜 연모.

미드소마를 보다 영화관을 나온 경험이 있는 나는 이제 스스로 견딜수 있는 잔혹의 강도를 잘 알고 있어서, 세평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마음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할 때가 있다.

아침잠이 늘어, 알람을 열다섯 개쯤 맞추고 그 알람을 끄기 위해 만들어진 캡처화면에 웃는 출근길.

내게 학벌이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버틸수 있는, 그럴싸한 입학장보다는 이 시간을 버텼다는 졸업증서가 중요했던. 머리와 지능 또한 알 수 없는 부모보다 환경이 챙긴 체력과 근육, 몰입해 앉을 수 있는 집중력에 많이도 기댔었고.

그래서 나이가 조금 더 들고 어린 층의 수가 얇아지면 그 중요성이 더 낮아질것이라 생각하여 요즘의 세태가 약간 당황스럽고.

학벌이 적절한 운과 시기, 노력할 수 있었던 당신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처럼 당신의 미래와 일대일로 등가교환되기엔 힘들어서. 어느 쪽에도 과한 무게를 싣지 않았으면.

꼰대의 발언이지만 과거의 무언가가 미래의 나를 보장해주는 것은 체력 - 건강이 아님 - 뿐인듯.

교수자의 말랑함은 때로 나를 웃게, 자주 나를 짜증나게 하고.

고요한 얼굴과 그 낮은 언어들이 미친듯 좋았으나 조금 더 나이든 배우가 필요했으리란 내 의견은 변함없고. 여전히 설정 외 대사와 행동 연출 장면 연결 모두 게으르기 짝이 없는 영상 속에서 그 얼굴이, 얼굴들이.

-그렇구나, 그저 배부른 마음으로.

장내가 어두워 몇번이나 발을 헛디뎠고, 설명조차 읽을 수 없음에 그저 그 광채와 휘황만을 오래 들여다보며.

여전히 아주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나면 모든 식욕이 사라지고.

소유욕과 물욕이 일렁일 때에도 장엄한 것들을 보면 마음이 잔잔해진다. 이런 것들이 세상에 있는데, 왜 내가 미달하는 모자람을 굳이.

긴 연휴, 전 이틀쯤 출근을 하고 하루 교육을 받고 밀린 책을 읽고 홉스봄의 저서 하나를 원문으로 볼 생각으로 몇몇 전시를 기억해두었습니다. 제가 알고 떠오르는 분들 모두 배부르게 즐거운 연휴 되세요.

428.

마음껏 빚을 져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던.

크게 미각에 휘둘리진 않지만 제육과 튀김을 좋아하고 자주 화장실을 가고 칼로리 소모가 빠르고 근육이 잘 생기고 살이 빠지기보다는 아랫배에 모이는, 나를 두고 어느 수련의가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남자처럼 먹고 남자처럼 소비하네요? 그들이 체중계에 관심없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서툰 변명을 덧붙일 때마더 그래서 네가 선출이구나, 라는 단정에 그저 웃고.

나는 이제 물러설 수도 없는 어른이 되어서.

토하면서 슈니츨러를 읽고 입센을 음악과 편곡으로 해석하다 하반기 즈음의 메켈레와 임윤찬을 고민하며 주미 강이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내 무지를 두려워하는지.

책에서 아무것도 얻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오래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가 그곳에 있어서, 그리고 당신의 실제를 나는 조금쯤은 부러워했을 겁니다.

나는 언제나 기약없는 감정을 받기보다는 내가 아는 무언가를 주고싶어서. 그래서 차가운 길가에 함께 앉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목소리를 높여 환호하고, 얼어붙은 손으로 박수를 치고.

-나는 절반쯤은 개다. 나는 절반쯤은 풀꽃이고. 나는 절반쯤은 비 올 때 타는 택시. 나는 절반쯤은 소음을 못 막는 창문이다. 나는 절반쯤은 커튼이며. 나는 절반쯤은 아무도 불지 않은 은빛 호각. 나는 절반쯤은 벽. 나는 절반쯤은 휴지다. 절반쯤 쓴 휴지다. 네 눈물을 닦느라 절반을 써버렸다.

젊고 사라진, 어쩌면 그 때문에, 혹은 그로 인해 선명한 글들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