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

이 계절, 맺음의 이야기들.

371.

문화계 종사와 향유 자체가 일종의 사치재라고 생각은 하지믄 이렇게까지 잘 포장된 기준 이하의 작품을 보게 되면 굳이 타문화의 뭔가를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자문하게 된다.

상처입은 아이들과 어린 여성의 모성애 구원 서사 진짜 지치고.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면 머리카락에서 벌레가 툭툭 떨어지는 계절.

낮잠을 자다 깨면 늘 이가 아프다.

이를 가는 버릇이 오래되어 어금니의 법랑질이 거의 닳았는데. 치과 의사의 경고에 의식적으로 턱에 힘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날.

분함을 삭히는 행동조차 닳지 않은 젊음의 것인.

NYT의 The Return of Tony Blair를 읽고 좀 싫다, 라는 생각을 잠깐.

이제 여름이니까 잘 넣어둬, 곱게 다림질한 손수건을 가방 겉주머니에 넣어주는 손가락도. 세상에 지쳐 엉망진창으로 책을 읽고 있을 때 호젓이 독서등을 켜주는 움직임도. 흐린 안경알을 아무렇게나 옷에 문질러 닦고 있을 때 고요히 문을 열고 나가 깨끗해진 안경을 가지고 되돌아오는 발걸음도. 카우치에 함께 누워있을 때 발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발바닥을 주물러주는 그 자상한 악력을 좋아한다. 어쩌면 사랑이라 이야기할수도 있을 만큼.

생각보다 흥미로웠고, 연기와 발성과 동작과 연출과 음악의 흐름이 재미있었던.

부분에 집중하는 카메라와는 달리 눈앞의 무대에서 각자의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군상극과 각각의 배우를 관찰하는 즐거움이.

좋아하는 배우분을 앞에 두고 떨리게 잡아오는 손마디나 마른 어깨, 가는 목덜미 같은 것에 어쩐지 나 또한 가슴이 뛰어서.

언제고 어디서고 좋아하는 분들을 만나는 경험은 어쩌면 이렇게 늘 나를 들뜨게 하는지.

검은 라운드 넥 라인을 감싸고 있던 낱알이 여린 진주와 라벤더의 화사한 자켓, 스피넬의 선명한 푸른빛과 한숨 날만큼 정교한 세공이 아로새겨진 반지가 자리잡은 부드러운 손끝. 흰 티셔츠와 핀턱 팬츠의 정갈한 라인과 담백한 은색 샌들 같은 것에 눈을 두며 생각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 연모는 죽지도 않고.

강렬한 맛들은 일부러 좀 피하고 있는데 복합적으로 섬세한 케이크와 구움과자를 먹을 수 있어 정말 기뻤다.

너무 오랜만에 화장을 해서 급하게 산 화장품 어느 호수가 내 피부보다 한 톤 높은 것도 몰랐다; 원래도 화장을 잘 하는 편은 - 자주 하는, 과 능숙한, 이 모두 있는 - 아니지만 요즘 정말 대충 썬블록만 바르고 마스크를 써서. 직장에서는 거의 랩코트만 입고 있기도 하고.

인내심이 사라져 미용실에 앉아있는 시간도 못 견뎌 하는 관계로 대중없이 길어버린 머리도.

깊은 정념과 퇴근길 인터뷰를 목격하고ㅋㅋㅋ 배우분의 어딘가 부드럽고 말랑해보이는, 그러나 여간해선 뺏기지 않을 만큼 질겨보이는 골격과 나른한 분위기를 보며 박 모 배우를 처음 본 어느 날을 떠올렸고.

열정에 취한 뒷모습에 슬쩍 걱정을 담고, 많이도 웃고 감탄했던 미드를 들고 버스에 오르는 꼿꼿한 등줄기를 배웅한 뒤 지하철과 자전거를 적당히 갈아타며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새로운 꿈으로.

생일 축하드려요, 이 여름이 끝나는 시기에 좋은 경험을 함께 할수 있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370.

-마치 그곳에 사랑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 삼 년이 된 집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하여, 어제는 마음을 먹고 화장실 손잡이와 배수마개, 전등을 교체했다. 다음주 쯤에는 현관문을 어떻게 할지 고민할 예정.

이렇게 어른이 된다, 몸을 기댄 주변에 신경과 정성을 쏟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