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재미는 있었고.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그 기나긴 흐름과 사이사이의 사건이 무척 흥미로웠음.

영화가 주는 개개의 재미와 그 완성도, 그 이후의 영화가 남기는 족적과 영향력은 전혀 별개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시리즈.

전 아직도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합성인간이 나오는 4를 너무너무나 좋아합니다.

어딘가의 다정한 손님과 남자를 함께 만났고. 오랜만에 피부를 부딪히며 인사한 남자는 너무... 말랐는데, 라는 외양에 관한 드문 문장을 처음으로 떼며 시시때때로 퇴사를 강권했다.

모님의 추천으로 어느 미국 드라마에 빠져있는 요즘. 주인공 중 하나가 끝내주는 보컬을 한다기에 관련 동영상을 틀어보다 조용히 기함했다. 그냥 제 멋에 취한 자뻑 중년이 음색과 외모만 사용해서 부르는 노래잖아요 톤도 음계도 엉망이고. 전 Suede 콘도 포기했다구요;_; 하는 내 투정에 너는 정말 음악에는 가차 없구나, 라는 모님의 대답이.

집이 없어, 를 참 좋아하는데. 각각의 치유과정과 더불어 부모에게 입은 내 상처만큼 내가 부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 또한.

언젠가 힐빌리의 노래와 공정하다는 착각을 동시에 읽으며 혜택받은 환경을 인지함에도 노오력을 견지하는 태도와 기회 균등을 발언하는 WASP 각각의 모습에 자본가와 학자 - 변호사와 교수 - 의 차이는 이렇게 벌어지나 여겼었고.

-더워.

415.

그리고 올려다보고.
마침내 그 영광을 육체에 새기고.

내가 통증이나 상처, 흉터 따위에 큰 관심이 없는 것은 운동을 한 영향일까.

최근 이동수단을 다룬 기억은 트럭, 이륜차, 자전거가 전부인터라 어제 테슬라를 처음 몰아보고 정말 놀랐다. 구매 비용과 그 내구도의 불일치는 차치하고라도 주변 환경이 이렇게까지 구현된다고?

일본의 여름 명소를 묻는 집요한 물음에 저는 여름에 일본에 가지 않습니다, 잘라 말했지.

-덥고, 더워서.

비온 뒤 무지개, 폭우 이후 불어난 물이 모든 이끼를 쓸어내리며 쏟아지는 모습, 잠시의 햇살에 다시 울기 시작하는 매미떼를 마주하면 아주 잠깐 세상의 비밀을 엿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손글씨를 너무 잊어, 내 주소를 알고 내게 주소를 알려줄 수 있을 만한 몇몇 지인에게 그날 읽은 문장과 별것 아닌 사진, 간단한 안부 몇줄을 추가하여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그 반응이 기쁘고 열렬하여 일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공간의 문제로 기억을 보관한 적이 거의 없기에 가볍게 읽고 버려주면 좋을 것이란 내 생각만 하여.

변호사들은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며 시간 낭비라 생각함과 동시에 인간과 텍스트의 불일치를 역겨워한다는 문장에 아, 하고.

전 직장의 어느 동료와 조우하여 와르르 소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지.
나 그때 오 개 국어 했는데 그 월급 받았잖아, 심지어 지금보다 훨씬 잘 했는데!
그때 견딘 씹새끼들 지금 다 정치 하잖아ㅋㅋㅋ

사회주의자 아닌 아버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무표정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약간 신이 난듯도 보였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 고문을 견딘 그 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So cut the headlights, summer's a knife
I'm always waiting for you just to cut to the bone
Devils roll the dice, angels roll their eyes
And if I bleed, you'll be the last to know

Oh, it's new, the shape of your body
It's blue, the feeling I've got
And it's ooh, whoa, oh
It's a cruel summer
It's cool, that's what I tell 'em
No rules in breakable heaven
But ooh, whoa, oh
It's a cruel summer
With you

I'm drunk in the back of the car
And I cried like a baby coming home from the bar
Said, "I'm fine, " but it wasn't true
I don't wanna keep secrets just to keep you
And I snuck in through the garden gate
Every night that summer just to seal my fate
And I screamed for whatever it's worth
"I love you, " ain't that the worst thing you ever heard?
He looks up grinning like a devil

414.

웃기고 기괴하고 소란하고 시끄러운 영화. 제 나이 앞자리가 지금보다 어렸더라면 별 다섯을 줬을 수도 있겠네요.

퇴사를 생각한다는 내 말에 답해오는 남자의 문장이 정말 상상 불가능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 약간 놀람. 그래도 우리가 같이 살 확률은 낮지 않을까? 하지만 조금 더 그 거리를 좁힐 수 있잖아, 그 가만한 대답에 나는 또 욱씬거리는 심장을 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개좆같은 새끼들이란 생각만 한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마음을 추스린다.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물에 손을 담그고, 그곳에서 마음껏 고통스러워하고 싶다.

어느 병원을 다녀온 모님에게서 네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언어를 듣는다. 누구에게도 기댈 필요없이, 그저 떠나는 것만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기에 늘 끝을 생각한다는 나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입술을 오래 바라봤다. 제 마지막은 언제든 어떤 방식이든 제 선택일거에요. 라는 말에 언제나 무척 화를 내던 모님이, 오늘부터는 내 어떤 선택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에 한참 숨을 몰아쉬던 나는 남몰래 간직해온 죄책감을 간신히 내려놓고.

네가 크게 외양에 신경쓰지 않아도 별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적당히 마르고 적당히 크고 적당히 근육질에 적당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말에 어쩌면, 이라는 생각을 한 순간도 잠깐. 그런 말을 할 만한 직계 가족이 없다는 특징과 더불어 그다지 회자할 것이 없는 무난무난한 겉모습과 차림이기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하지만 누구든, 혹 그런 권리가 있다 착각한 본인들이라도 어떤 말들은 여전히 상처가 될 것이란 상상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