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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떠올리면 숨도 못 쉴 만큼 좋아하는 영화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Foxcatcher, 라 말을 꺼내자 남자가 엄청나게 이상한 표정을 지어서. 왜? -아니. 근데 왜? 음, 아니. 그래서 왜? 아 그냥, 아재 - 이 단어에 대한 남자의 발음은 이제 위화감이 없다 - 취향이라고 생각했어. 젊음을 동경하는 늙음과 늙음을 경애하는 젊음이 동시에 등장하고, 모든 걸 가진 중년은 살해당하잖아. 타인의 충족을 못 견뎌하는 결핍의 영화라고 생각했거든.
-아.
여행은 혼자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나는 오성급 호텔이 아니라면 아예 게스트 하우스를 숙소로 잡곤 한다. 애매한 별들의 호텔 주인과 일하는 사람들, 혹은 그 주변의 인물들이 혼자인 내 방문을 따고 들어올 가능성은 낮은 편이 좋으니까. 평균보다 크고 평균보다 무거운 나조차 이런 일들을 수도 없이 겪는데.
누군가 나로 인해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언제든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높은 굽을 신은 채 너를 향해 웃을 거야,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고.
처음에는 선의였지. 몇줄의 글귀를 그 나라의 언어로 바꾸어놓는 일은 내게도 어렴풋한 공부가 되었고, 그렇게 애를 쓰지도 공을 들이지 않아도 네게 뿌듯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 또한 들떠 있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의 부탁은 점점 살이 붙어, 이제는 A4 몇장이 팔랑거리는 내용을 두고 나는 더는 안 된다는 거부를 했지. 내가 지금의 자리를 잡은 것처럼 나도 나와 같은 이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길 원한다고. 이건 반칙이고 이제 손등의 혈관이 도드라지기 시작한 나는 더이상 누군가의 울타리를 침범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너는 식은 눈으로 나를 보다 나는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했어, 혼잣말을 흐렸지. 나는 간신히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지. 지금도 난 그렇다고 생각해. 너는 답하지 않았어. 너의 침묵에서 나는 네가 생각하는 나라는 친구의 범위를 읽어냈지.
은은하고 맵싸하게, 모든 현실을 송두리째 아우르는 감각.
그 마음의 계량.
의학은 우리 시대 유일하게 남은 예언학이 아닐까. 유전과 세포를 기반으로 하는, 언젠가는 닥치고 말 선고의 학문.
사기에 가까웠던 그 계약을 뒤엎기 위해 대리점을 찾아가겠다는 나를 향해 언젠가 모님이 그랬다. 네가 화를 내는 것도, 이런 일에 시간과 돈을 쓰는 것도 나는 아까워. 그걸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냐. 그냥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랐어. 그냥 네가 알고 이런 나를 이해해주면, 나는 그걸로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 뒤부터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를 판단하기 전, 지금의 이 감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스스로에 공정과 정의감에 취한 나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반응을 구한 내 눈 앞의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알고 방문한 것은 아닌데. 무난한 근현대 미술 - 작품 사이 간격이 넓어 휠체어 이동도 자유롭고 - 을 보고자 했던 내 바람과는 달리 오더 메이드 납품 이후 본사가 재구입, 경로로 이어지는 Van Cleef & Arpels의 예술에 가까운 공예품만 실컷 감상했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간이 적어 걱정을 좀 했는데, 사전 문의 없는 방문이었음에도 내가 이동하는 내내 사람이 붙어 안내와 간격을 동시에 유지하게 해준 것도 꽤 인상적이었고.
일종의 궤를 벗어난 실용품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구나, 생각을.
이 분야는 일천하여 경도와 강도의 구별, 브랜드별 컷팅의 특징 정도가 들어 익힌 인지의 전부였는데, 세공 - 소위 미스테리 컷팅이라 불리우는 -의 방법이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연신 감탄을.
Tiffany는 Tiffany 세팅과 밀그레인 기법이 유명하지만 일단은 전가의 보도인 난초 시리즈를. 2007, 8년 즈음에 한국에서 전시회도 열렸던 것으로.
언젠가 다른 모님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대공습London Blitz이라던가 영국 본토 항공전을 떠올리면 심장을 대패로 밀어내는 것처럼 소름 끼치게 좋다고 이야기주신 것처럼, 저는 다이나모 작전 중에 됭케르크의 작은 배들Little Ships of Dunkirk의 선수를 장식했을 성 게오르기우스의 십자를 생각할 때면 호흡 곤란으로 시야가 녹아내릴 것 같습니다.
-스카치의 이데아처럼 생긴 저 청년은 뭐지? 라는 감상이 10월 개봉을 기다리지 못해 비행기표를 검색하는 수순으로 이어지는 이 뻔한 과정이란.
대화, 거리의 좁힘.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음식을 먹었을 때 함께 떠오르는 얼굴들이 내겐 그렇게 많지 않아, 어딜 가든 무언가 재미있는 것,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면 그 얼굴들을 위해 덥석덥석 돈을 지불하곤 한다. 이 곳에서 오기 위한 짐을 챙길 때 한껏 쌓아둔 그들의 상미기간과 시간의 때가 묻은 흔적들을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종국에는 쓰레기가 될 것을 알지만, 결국 내 마음과 경애가 이런 소비인 것이라.
어딜 가든 입국심사장의 사람들은 내게 묻곤 한다. 짐은 그게 다니? 나는 조금은 곤란하고, 조금은 불편한 기분으로 응, 이게 다야. 라고.
이 시대의 부의 증명은 곧 공간.
더워 보여, 라는 말에 남자는 난 여기서 대학을 다녔어, 이를 드러내며 웃고. 몇십 년 전에 할아버지가 있던 공간이네, 내 혼잣말에 그 때 있던 가게들이 지금도 있을 거야, 내기해도 좋아. 라 돌아온 대꾸에 나는 새삼 나와 다른 나라를 이고 있는 남자를 실감한다. 아무런 부침을 겪지 않고 몇십, 몇백 년 동안 유지된 가게를 이르는 천진함.
예산의 정도에 따라 가장 격렬하게 달라지는 여행지를 나는 홍콩으로 꼽곤 한다. 장만옥의 무표정한 얼굴과 양조위, 왕가위에 반해 처음 방문했던 열아홉의 홍콩 - 볼 것이라고는 네온 사인과 낡은 거리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 과 스물아홉 - 어찌 일설로 - 의 홍콩은 명백히 다른 공간이었으므로.
누구도 책임질 권리가 없었던, 다만 일어서서 말해야 했던.
내 시간들에 참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자는 항상 타인의 칭찬을 듣지만, 남자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늘 등 뒤의 말을 들어야하는 나는.
There's no Satan.
No God. Only humanity. Only me!
May God forgive you, Frankenstein! May God forgive you.
-Come to me. I am your brother. Oh, my brother Henry, forgive me. I have wronged you.
Out of the way, Victor! Out of the way!
For this is not life. This is not life- you are not life.
이런 작고 미친 영화들이 주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 너무 좋음;_;
-아름답지도 고아하지도 않은, 그저 미래를 준비하는 그 단단한 얼굴들.
특별히 쓰지 않으려 한 건 아니었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일들을 약간이나마 겪으며 이번 일만 지나면, 이번 일만 지나면- 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 길어지고 말았네요. 언젠가 어느 분야의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육체를 지탱하는 것은 정신인가 노력인가 육체 그 자체인가, 라는 주제를 꺼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제 몸을 버티게 하는 것은 육체에 쌓아둔 과거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되는 즈음이기도.
인공 관절 대체술을 받은 뒤 재활을 받을 시간이 없는 제 상황을 고려하여 통증과 혈전을 예방케하는 약물을 꽤 오랜 시간 복용해왔고, 여러가지 상황으로 말미암아 무릎이 덜그럭거리는 증상을 한동안 내버려 두었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올라타야 했던 비행 기압과 피로의 영향도 있었을 테고. 이 무릎으로 축구라도 했어요? 라는 문장에 배알이 꼬여 옮긴, 약간은 더 익숙한 나라에서의 법적 관계자가 제 겨드랑이 아래에 자신의 어깨를 디뎌주는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재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조금씩 걷고 많이 이야기하고 더러 화를 내고 자주 부채질도 하면서, 5분 간격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30분쯤 고민한 답장을 쓰고 제 땀과 기름과 울화에 찌든 시트가 바뀌는 동안 색이 달라져가는 병원 앞 거리들을 멍하니 바라보곤 합니다.
덥네요.
아깝게도 시간은 흐르는데. 이토록 쉬어야 하는 나날들이 짜증스럽기도 또 기쁘기도 한, 이상한 나날입니다.
우리 둘 중 하나에게 익숙한 나라에서 보내는 시간은 늘 허니문 같아.
개인적으로 허니문은 정말 낯설거나 아주 친밀한 곳으로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응, 그렇지만 너와 내겐 보통이 그런 것이었으니까.
나는 늘 내 안의 언어를 1이라 상정한다. 그리고 그 1안에서의 모국어와 외국어의 비율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태생적으로 언어에 대한 감각이 좋은 사람이라면 1.5정도까지는 도달하지 않을까. 허나 그렇지 못한 내 안의 1의 분포는 0.4의 한국어와 0.3의 일본어, 0.2의 영어와 나머지를 두고 다투는 중국어와 러시아어, 베트남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라오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약간의 네덜란드와 스위스, 오사카와 교토, 나고야와 큐슈 사투리 같은 것들. 그리고 무언가가 증가할 때면 다른 무언가의 비중이 줄어들곤 해서, 남자와의 대화 사이에 섞이는 영어와 한국어 단어들이 아쉬워지는 이유 또한 이와 동일하다. 내가 지닌 열망만큼 내게 감각이나 재능이 있었다면.
한 때 내가 체류하던 공간에서의 go와 come, 상대를 높인 you와 격식을 갖춘 me를 표현하는 단어는 동일한 것이라, 어느 정도 그 언어에 익숙해진 뒤의 나는 날더러 가라고 하는 것인지 상대방이 오겠다고 하는 것인지를 몇번이나 되물어야 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거리를 표현하는 양양은 내가 아닌 상대가 중심이다. 응, 네가 있는 방향에서 나한테까지는-
정말 좋았다. 언어가 나타내는 문화와 그 문화가 깃든 언어의 각기 다른 표현들, 그 언어권의 사람들이 그를 구현하는 방식들.
지금까지의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And who by fire, who by water,
Who in the sunshine, who in the night time,
Who by high ordeal, who by common trial,r
Who in your merry merry month of may,
Who by very slow decay,
And who shall I say is calling?
And who in her lonely slip, who by barbiturate,
Who in these realms of love, who by something blunt,
And who by avalanche, who by powder,
Who for his greed, who for his hunger,
And who shall I say is calling?
And who by brave assent, who by accident,
Who in solitude, who in this mirror,
Who by his lady's command, who by his own hand,
Who in mortal chains, who in power,
And who shall I say is calling?
최근의 몰두는 Leonard Norman Cohen.
언제나 걷고 있는 듯, 긴장된 표정의.
추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공기를 마시고 그 길을 지나고
사람들의 말들 속에 너의 향기를 찾고 너의 말투를 보고 울죠
白盡餘生髮 單存不老心
栖栖非學楚 切切爲交深
遠夢悲風送 秋懷落木吟
古來聰聽者 或別有知音
몽땅 허옇게 바랜 만년의 머리카락
지닌 것이라곤 노쇠에 굴복 않는 마음뿐이지.
쓸쓸하게 떠도는 건 접여를 배워서가 아니라
깊은 사귐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라네.
그리운 님 꿈속에서 찬바람에 실어 보내고
낙엽 지는 소리에 가을의 상념 읊조리오.
자고 이래 귀 밝은 사람 중에서
어쩌면 따로 지음이 있을지도.
-어둡지 않게 그늘진 얼굴. 무척이나 아끼는 종류의.
많은 일이 있었고. 이 일들을 어떻게 한낱 단어로 표현할까, 하다. 기록해두지 않는다면 이 일들은 결국 내 안의 태풍으로 잠잠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기실 내가 당신이 잠기는 것을 볼 수가 없어.
가볍게 한 이야기였지. 일반적으로 나는 여권도 외국인 등록증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데. 내가 여기서 교통 사고를 내거나 갑자기 쓰러지거나 의식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거나 하면 나는 신원 미상의 부상자나 시체가 되어 사라질지도 모르겠네. 그 이야기를 들은 동료는 한참 말이 없다, 뜬금없는 시간에 내게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거나 했지. 밥은 먹었어? 다 괜찮아? 요즘에도 집 조명은 깜박거리니? 의아해진 내가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누군가 신원 미상의 너를 발견한다면 내 번호가 네 휴대폰 제일 상단에 떠 있길 바란다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라는 말을 들었지.
오랜만, 이라고 표현하기에도 겸연쩍인 시간을 흘려보낸 남자와 나는 함께 보내는 며칠을 밑반찬을 준비하는 것으로 소모하곤 했다. 날리는 마늘 껍질을 훼훼 밀며 눈 사이를 모으는 나를 향해 내던져진 간장 배인 몇 마디에 그만 나는 푸르르 웃어버리고. -누가 괴롭히면 그냥 다 그만둬, 참고 견딜 필요 없어. 그냥 그만두고 나한테 와. 스스로를 자신하는 남자의 오만함이 내 가치의 우선순위였던 기억은 없지만 단 한 번도 가진 적 없던 등 뒤의 무언가 만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서.
내몰린 등 뒤가 단단할 때 스스로의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으니.
그리고 이 뜬금없는 순간들에 위로받을 때도.
삼촌 - 근친 살해 - 의 트라우마로 움직이는 동기 자체가 엄청나게 변태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슈가 대디와 귀여운 여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갈데까지 가는 구나, 라는 의심이 깊어서.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는 히어로가 유사 이래 얼마나 있을까 더듬어보다 제가 그 영화에 마음을 붙일 일은 영영 없겠다 싶었네요. 저의 격렬한 혐오 중 둘이 어린 병사Child Soldier와 대리전쟁입니다.
빛의 분사.
전공이 전공인터라 몇 개쯤 유명한 이름들을 사적으로 기억하고 있긴 하지만. 전공 교수님이 이따금 거론했던 글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뚱땅뚱땅 작곡도 하고 최근에는 상도 하나 받은 느이 후배, 가 내가 올해의 앨범으로 꼽았던 노래를 부른 가수라는 사실이, 덥수룩한 머리로 눈 앞을 모두 가린채 내밀어진 물음마다 깊게 파인 볼우물로 먼저 대답하던 그 느긋한 사람이 소위 민중 엔터테이너, 였다는 이야기는.
올곧고 흔들림 없는 애정을 받은 이들을 망치고 싶지 않다. 사랑받음을 아는 사람의 기준은 정말 귀한 것이므로.
각자 다른 모든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선 하나를 마련해 두는 것,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선의 높고 낮음이 국가의 현재를 좌우하고.
-나는 육친의 마음보다 적의 마음을 더 알고 싶어했고, 친우에게 줄 것보다 적에게 줄 것을 고민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내 행동에 대해 보여주는 반응보다 적들이 내 공격에 대해 보여줄 반응이 더 궁금했다.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위대한 전사라 말할 때, 그들은 내가 적을 더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구원자라는 찬란한 이름을 선물할 때, 나는 복수심에 찬 약자들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상실했다. 나 또한 약자였기 때문이다.
일정한 결의 그저 격렬한 미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은 한계가 있고 분명히 닳는다, 닳아간다. 그렇기에 더이상 생각하지 말자, 라고.
-아직도 이따금은.
나도 엄청나게 스스로를 연민하는 타입이긴 한데.
내게 꽤 큰 실수를 했으며 그 실수에 대한 사과보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의 예의로 유야무야 사건을 묻고 지나가길 바랐던 사람이 여전히 나와의 끊긴 인연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하루 날짜를 새어 가며 내가 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글쎄, 정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아 서투르게 창작된 글 몇줄을 읽는 기분이었다. 이상하리만큼 현실감이 없는, 그러나 기묘하게 불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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