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439건
태국어를 약간이나마 알게 된 이후 다시 본 영화는 이만저만 빻은 것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나와는 전혀 다른, 내게는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에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만큼 즐거운 경험은 없지. 립스틱이 꼼꼼히 칠해진 얇은 입술 같은.
박제된 낡음이 드러나고 전시되는 경향은 영화, 드라마와 같은 시청각 매체가 더 심하지만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그 텍스트의 낡음은 여전히 고정되어있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다시 말해 영상보다 글의 낡음을 알아차리고 그를 변화시키려하는 행위 - 변화를 위해서는 읽고, 판단하고, 자신의 판단에 다수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며 - 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모 님이 트윗을 통해 텍스트를 즐기는 자들이 적어진 것과 굳이 텍스트를 읽어야할 당위에 대해 짚어주신 것처럼, 이제는 주류의 자리에서 밀려난 텍스트가 여전히 그 가냘픈 위상만은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학위 이상의 많은 이론들이 아직은 자신의 언어를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는 것에의 천착과 모 님의 언급처럼 그야말로 덕질, 을 위해서 라는 것.
글, 혹은 텍스트를 주로 하는 최후의 연구 집단은 어떤 종류의 동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때도 있고.
요즘은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스스로가 소모되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번도 별로였네, 이제 다시는 만나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이전에 쌓아두었던 애정에 기반한 거절의 한 마디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이어지는 존재에 대한.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를 정리하는 것 또한 거대한 용기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내 길티 플레저인 About Time에서 "Hello. Do I know you?"라는 한 마디에 이미 반했던.
-아무런 연상없이 떠오르는 아름다움에 순간 사로잡히는 때가 있다. 네 쇄골에 부딪혀 구부러지는 목걸이의 곡선 같은 것들.
그러니 내가 온전히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수 밖에. 기회가 닿는다면 시원한 에어컨과 엄선된 해산물로 모시겠습니다.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흥미로운 블록버스터였기에 시간이 나면 길게 써볼 생각도 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명명백백한 악에 어떠한 변명도 핑계도 주지 않았다는 것. 나는 이제 모호한 선과 악의 관점을 - 결국 어느 쪽이 승리하든 - 다루는 양양이 뻔한 안타고니스트보다 높게 평가되는 풍토에 좀 질려버려서.
한국의 몇몇 신작 소설과 오버 더 초이스를 읽었고, 2014년의 참사에서 영향을 받지 않은 글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에 - 작가 각각의 특징이 심하게 투영된 것은 차치하고 - 과연 우리에게 무슨, 어떤 자격이 남았나를 자문했던.
짧지만 독립 법인을 지닌 국가기관에 몸 담았던 시기와 시립 공공기관에 있는 현재와의 행정적 차이를 느끼고 있는 중이기도.
나를 소모하는 것들에 많은 마음을 쓰지 않으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행하려 노력하는 즈음.
휴대폰 후면 카메라의 포커스 조절이 안되고 있는데, 고치는 금액이 새로 사는 금액과 거의 비슷하여 그냥저냥 버티고 있다. 급한 경우에는 어색한 각도로 전면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가볍게 찍어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을 머릿속에 더 상세하게 기록하기 위해 오래 보는 일이 늘어나기도 했고. 모두가 휴대폰-카메라가 없었던 시절에는 이렇게 바라보는 일이 불편하고 애틋했었지, 라고 잠깐.
그래도 일단은 한다와, 그에 맞물린 새로운 것들의 등장에 나는 언제나 손을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어쩌면 누군가 의도한 지금까지 너는 불편했던 거야, 그렇지? 의 암시에 지나치게 잘 걸려드는 편인 것 같다는 생각 또한.
내 몸이 점점 줄어든다. 내 몸의 원자들이 더 가까워져서 밀도가 높아진다는 뜻이 아니라, 나 - 자신의 원자들이 소우주와 합쳐지면서 융합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무척 뜨거운 열기와 견디지 못할 빛이 있을 것이고 - 지옥 안의 지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나는 빛이 아니라, 꽃만 바라볼 뿐이고, 스스로 불어나거나, 나누어지지 않으며, 여러 가지의 것에서 하나로 되돌아간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빛나는 꽃이 눈 깜짝할 사이에 금으로 만들어진 원반으로 변해서 줄 위에서 회전하며, 그런 뒤에 소용돌이치는 무지개들로 변하더니, 마침내 나는 동굴에 다시 돌아와 있고 동굴에서는 모든 것이 고요하고 어두우며 나는 나를 그 안에 받아들일 곳을... 나를 끌어안을 곳을... 나를 흡수할 곳을... 찾아 젖은 미로를 헤엄친다.
그렇게 내가 생겨났으리라.
-이 한 문장 한 문장과 살갗과 머리카락과 이마와 콧등을 적시는 땀을 느끼며 석계역을 걸어올라가던 그 밤을 나는 오래 기억하겠지.
나는 빛이 아니라 꽃만 바라볼 뿐이고.
세상에 일어나는 나쁜 일의 대부분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이겠다, 라고. 나는 이런 말들을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읽고 있는 것일지도.
“I don’t like playing or seeing women sort of wafting about fanning themselves and being fairly vapid you know? I don’t believe it. -I had to get really get rid of this idea of her being languorous, just like beautiful and wafty and empty. I didn’t believe that. I see her as extremely complicated and elusive but also so bored… And damaged and in pain, because otherwise I just didn’t believe it. Why would she just not leave him? There’s something keeping her there and it’s fear.”
육상을 시작한 이유도 그만둔 이유도 다리였지만 그 3년의 무릎이 내 남은 평생을 괴롭힐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서.
좋지 않나요? 우리는 평생 서로에게 빚을 지고, 그 빚 갚음을 위해 안간힘을 쓰며 서로의 만남을 이어가고. 그 부채가 각자에게 어떤 감정을 주느냐에 따라 이 관계는 저마다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겠죠.
Everyday nothing seems to change
Everywhere I go I keep seeing the same old things and I
I can't take it no more
Oh, I would leave this town
But I ain't got no where else to go
Wake up in the morning to more, more bad news and I
Sometimes I feel like I was born to lose and I
It's driving me out of my mind
Gonna catch the next train and I
And move on down the line
Whoah I'll be ready now
I'll be ready when my train pulls in
Whoah I'll be ready now
I'll be ready when my train pulls in
I know my time ain't long around here and I
I can't live this life again
Walking down the street you might wanna cross a smiling face
But they'll stab you in the back as soon as you turn and walk away and I
Oh Lord, it's bringing me down
If things don't change around here
Ain't no use in my hanging 'round
Whoah I'll be ready now
I'll be ready when my train pulls in
Whoah I'll be ready now
I'll be ready when my train pulls in
I know my time ain't long around here and I
I can't live this life again
-미국인에게 기차란 과연 무엇인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들은 드물다고 생각하는 내게도 옳아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그 모든 시간과, 사람과, 마땅한 결과에 무조건의 박수를.
나는 이제 안 했는데 그냥 됐어요, 보다는 조금씩 보긴 봤어요, 라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좋은 사람이었지만, 의 서두를 떠나 자신의 잘잘못조차 공정히 대우하고 책임질 수 있는 모습을 바랐었지. 이미 사라진 자리의 남은 문장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만.
사소하지만 끈질긴 노력들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 아직도 불매하니? 그거 아무 의미 없어, 와 같은. 어렵게 움직이는 스스로를 변명하기 위해 손 쉬운 타인의 것을 비난하는.
내 취향대로의 사운드 디자인을 보고 싶을 때 돌려보곤 하는.
사람은 이토록 조용히, 아무런 소리도 없이 숨을 거두고.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자신만의 격정을 찾고.
-지금 봐도 너무 좋네;_;
우리는 갖가지의 소리 속을 살고 있지만 기실 가장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소리는 무음, 즉 들리는 소리 없음이자 침묵이지요. 언젠가 저는 이러한 침묵을 영화적 형태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게에 앉아서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한 아이구나” 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나는 인정받기를 원했고, 오래전에 내가 신발 끈을 묶고 스웨터의 단추를 채우는 법을 익혔을 때, 만족스러워하던 그의 얼굴에 떠오르던 환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 표정을 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지만, 끝내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빴고, 정말 더웠고, 많이 아프기도 했고,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로 즐겁기도 했던.
코 끝을 아리게 하는 초가을의 공기를 그리워하면서도 아침잠을 깰 때마다 온 몸을 침대로 잡아끄는 서늘함이 없다는 사실에 아직은 안심하게 되는.
여전히 과한 것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조마조마함이 없지는 않고, 이직한 곳의 장점과 단점을 밤새도록 꼽을 수도 있지만. 내가 친절하고 싶을 때 친절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정말 마음에 든다. 마음껏 친절하고, 눈치 보지 않은 채 멋대로 웃어드리고. 네가 그러면 다음 사람이 불편해져, 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우울해하는 어머니를 위해 직장 경험은 아직 없지만 지난 30년간 가정에 충실했으며 이제는 새로운 일을 찾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로 시작하는 이력서를 어느 취업 사이트에 등재했고, 이후 주부를 우대하는 어느 기업이 그 문장을 마음에 들어해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으며 짧은 면접 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어머니가 많이 밝아지셨다는 이야기에 내가 얼마나 대단하다, 를 연발했는지.
너는 정착 없는 너의 삶이 부모님께 누가 될까 언제나 걱정을 했지만, 여러가지를 듣고 있는 내게도 너의 것만큼 굉장한 이야기는 정말 드물었어.
약간 취한 상태로 배가 부르고 내가 운전하지 않는 차를 30분 이상 타면 높은 확률로 멀미를 한다. 내게 밀어주신 타다끼를 두고 돌아서야 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더러는 걷고 더러는 버스를, 또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시 걸으며 다음에는, 다음에는- 이라는 생각만.
선거와 과거 이야기를 되새기며 혼자 즐거웠던.
우리는 모두 어떤 옷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랑은 때로 매우 굳건하다. -내게도 이런 옷이 있다. 처음 가본 백화점에서 한달 아르바이트 비를 모두 털어 샀던, 진한 녹색의 베네통 니트. 소매 끝과 팔꿈치, 양 겨드랑이가 모두 닳아 날캉날캉 부드러워진 올이 굵은 그 옷을 나는 아직도 이따금 꺼내 입는다. 최저임금이 1,865원이었으며 하루 10시간을 꼬박 일해도 40만원을 채 벌지 못했던 때의 내 하루를 떠올리며, 그럼에도 여전히 그 생생한 색깔을 놀라워하며.
최근 배경음악처럼 틀어놓는 곡은 조성진의 달빛.
기억을 잠식하는 것은 늘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서울에서 가장 아끼는 풍경인 뚝섬유원지와 청담 사이를 지나는 한강 강변을 바라볼 때면, 내가 얼마나 이 도시를 사랑하는지를 새삼 깨닫곤 한다. 아주 좆 같음과 약간 덜 좆 같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난 과거가 쌓아올린 지금의 나 또한.
기괴하고 음울하고 슬프고 이상하고 어딘가 아련한, 하지만 끊임없이 제 취향인 영화더군요. 결국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어딘가의 사람, 어딘가의 여성, 어딘가 상처입었지만 그럼에도 일어설 수 있는 이들일테고- 다른 어딘가의 우리들은 그 사실을 영영 모를 겁니다.
언젠가 모님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성장, 이라 말해주셨는데. 저는 여전히 내가 될 수 없는 무언가가 생기는 것을 분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 지독한 더위는 한편으로 진이 빠지게 시원한 구석도 있어서.
그 흔적이 드문 유년을 지난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머니가 나타나 밥을 차려줬으면 좋겠다거나, 나를 챙겨주길 바란다거나 하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 없지만. 정말 생각이 짧은 이야기를 연속으로 내뱉어 분위기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여기 조부가 있었다면, 이라는 상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리광도 일종의 학습의 효과인 셈.
다른 나라의 언어는 익숙하지 않음에 그저 평평하게 대화하게 된다는 불만이 있음에도, 나는 언젠가 電気釜라는 단어를 몰랐던 내가 쌀이 밥으로 변신하는 기계를 주세요, 라고 말했던 때의 상상 너머 묘사를 더 마음에 들어하기에.
그 흔한 감상문이라도 내 글로 상을 받아본 기억은 없지만 기자 노릇을 비롯한 이런 저런 상황을 지나며 좋은 글을 보는 눈을 기르게 된 것은 내 행운이라 여기고 있다. 재능도 없는 언어에 늘 욕심을 지니는 이유 또한 이에 기한 바가 크겠지. 혹 다른 나라의 언어일지라도, 그를 배우고 이해하여 더 많은 글을 접하고 읽고 감탄하고 추종하고 싶은 내 열망.
좋은 것을 보면 늘 웃고 싶고, 슬픈 것을 보면 언제까지고 울고 싶은.
최근 어마어마하게 고민하고 있는 턴테이블 + 스피커 조합.
Iconic이라는 단어는 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차갑거나 덥거나. 계절의 변화는 사람들을 무르게 만들곤 했다.
Thor 시리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Bifröst가 명확한 질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 시공간을 초월한 Einstein-Rosen bridge가 모든 차원에 작용하는 물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연결에 있어 부서지거나 재건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내게 있어 그 세계관의 가장 마법적인 요소로 자리함.
내게 유구한 먼 눈은 개개인의 잘못과 성과를 모두 신의 뜻으로 돌리는 사람들이었는데. 최근 이건 정말, 싶었던 것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를 생각 없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람들의 죄를 표백해주는 현상. 스스로 택한 죽음이 가장 큰 벌이자 잘못이자 속죄라고 여김과 동시에 소위 그 극단으로 피해와 가해 모든 것을 덮고 싶어하는.
-모쪼록 모님이 무사히 돌아오고 계시길.
그냥저냥 무난한 여름 영화였지만 몸을 쓸 줄 아는 배우가 자신의 몸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죽은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는 순간 Daddy's little girl이 되어버리는 - Dad, I'm hurt!가 개중 최악 - 전환이 저를 좀 짜증스럽게 만들었지만, 그런 아버지가 완전히 사라진 자리에서 턱을 치켜드는 장성한 후계The King's Heir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더군요.
Did you go to Oxford or Cambridge? -Come on, which was it?
You know what, dad, I... I didn't go to University.
Well there's time yet, you're still only a child.
No, I was a child when you left me.
이 대화가 저를 상당히 뿜게 했으며.
그리고 후속이 절실해진 이유는 악역으로 등장할 Kristin Scott Thomas를 기대하기에.
오랜만에 장혜원 교수님의 Bach: Piano Concertos, Vol. 1을, 2001년 Lara Croft: Tomb Raider에 실리기도 했던.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라는 문장에서 캡틴을 떠올리고 내가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한국에 라플 들어왔네. 애플파이 정말 좋아함:)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은 여자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높고, 가늘고, 폭력적일 만큼 다정해서. 여자는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송곳니에 걸려 찢어지던 그 입술의 감촉을 먼저 떠올린다. 금이 짙은 창 너머의 희뿌연 결로가 살얼음으로 변할 만큼 추웠던, 코 끝을 맵게 만들던 그 공기와 핥아올린 피의 맛을 구분할 수 없던- 그 떨리는 계절 또한.
"당신은 늘 나를 몰아붙이고, 닦달하고, 나한테서 뭔가를 원해. 우린 그렇게만 살 수는 없어.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어. 이런 지속적인 압박, 당신은 늘 내게서 뭔가를 더 원해. 그 끝없는 갈취."
"갈취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돈 얘기를 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아니었다. 돈은 그녀의 생각과는 거리가 한참 먼 얘기였다. 돈 얘기를 꺼내다니, 도가 지나쳤다. 그가 어떻게 감히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알겠어. 지금 당신 입으로 돈 얘길 꺼내는 걸 보니, 확실히 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군."
그녀를 자극했던 건 그의 빈정거림이었다. 아니, 그의 경박함이었다. 그녀가 말하고 있었던 건 돈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것은 그녀의 입속으로 깊이 밀고 들어오는 혀, 치마나 블라우스 속으로 한껏 뻗치는 손, 그의 사타구니로 그녀를 잡아당기는 손, 그녀를 외면하고 침묵으로 빠져들 때의 그 특유의 태도였다. 그리고 그녀가 뭔가 더 주리라는 은근한 기대였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모든 것의 속도를 늦춘 원흉이었다. 그 어떤 새로운 경계를 넘어도 언제나 또다른 경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허락할 때마다 매번 더 많은 것이 요구됐기 때문에 판을 깨는 사람은 바로 그녀가 되었던 것이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언제나 비난의 그림자, 불쑥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산봉우리처럼 감출 수 없는 욕구불만의 그림자, 두 사람 모두 그녀 탓으로 돌렸던 영원한 슬픔의 정서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사랑에 빠져 있고 싶었고 그녀다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다워지기 위해선 그녀는 늘 "안 돼"라고 말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면 그녀는 더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상적인 삶의 반대편인 병적인 삶 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녀는 자기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빨리 해변을 따라 그녀를 쫓아온 그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여기 영국해협 해안가에서 그들이 여태껏 나눈 얘기는 그런 큰 그림의 작은 주제에 불과했다. 그녀에겐 이미 앞이 훤히 보였다. 이렇게 입씨름을 하다가 완전히든 반쯤이든 서로 화해를 하고, 그녀는 그의 회유에 마지못해 방으로 되돌가고, 그러고 나면 또다시 그녀에게 '기대'라는 짐이 지워질 터였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실패할 터였다.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결혼한 지 여덟 시간밖에 안된 그녀에게 매 시간이 무거운 형벌이었고, 이런 생각들을 그에게 설명할 방법을 몰라 더욱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돈을 화제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그가 이토록 흥분한 걸로 봐서 그 주제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McEwan의 글 중 교육 깨나 받은 중상류 계급의 남성을 까고 까다 그 뒷발질로 뜻밖의 여성을 발견해내는 소설이 드물게 있는데 - 완전히 대상화되어버린 것으로 암스테르담이 있고 - , 그 중 하나인 플로렌스를 Saoirse Ronan이 어떤 방식으로 그려낼지 고대하고 있는 중.
네 앞의 언어는 늘 얼어붙고.
코딩이라는 것이 정해진 언어와 규격화된 알고리즘을 최소한의 도구로 두고, 일부에서 전체로 내 머릿속의 구조를 설계해나가는 나만의 시스템이라는 감각을 떠올릴 때마다 쇼를 응시하는 루트의 아연함과 강렬함을 느끼게 됨.
처음을 알기에 예측 가능한 마지막을 가늠할 수 있지만, 결국 말하고 웃고 움직이고 행동하며 달리는 것은 너이기에 나는 영원히 그 중간을 알 수 없음.
어떻게 너는. -어떻게, 너는?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