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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타인의 다정이 뼈에 저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있다. 편의점 메론빵을 좋아한다고, 스치듯 말한 몇 마디를 기억해 언어도 낯선 나라에서 산책을 다녀올 때마다 메론빵을 사오던. 몸둘바를 몰랐던- 나를 죽일 것만 같았던 그 무시무시한 다정함.


현재의 깊이감보다 미래의 발전이 기대되는 가수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황홀하죠.


Yeah, I hurt you, and you hurt me

Yeah, we did some things that we can never take back

And we tried hard just to fix it

But we broke it more

And so I guess some things are not meant to last

Is it too much to ask


For tonight

Let's love like there's no goodbyes

Just for tonight

Pretend that it's all alright

39.

‘부양의무제.’ 현행법은 가난의 책임을 모두 다 개인에게 떠넘기기 바쁘다. ‘가난한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두 가지다. 동정하거나, 비난하거나. 결국, 모두 ‘네 탓’이라는 거다. 네가 무지하고, 무력하며, 무능해서 안 됐지만,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게을렀던 건 모두 ‘개인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노동을 열심히 했음에도 가난하다면 그건 네가 분수에 맞지 않게 낭비를 해왔다는 증거다!


이것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일종의 모욕이다. 고되게 노동하며 살아온 가난한 노인에게 주어진 삶은 두 가지뿐이다.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노동을 하거나, 멍하게 방 안에 앉아 TV를 보거나. 오늘도 TV에서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새로운 기계가 끊임없이 소개되고, 그들의 자녀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점점 기계가 대체하는데,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모욕당한다. 모욕당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은 내 방뿐이다. 주기적으로 리모델링을 해줘서 멀끔하고 비도 새지 않는 안전한 내 집, 내 방. 인간(人間)이란 단어에 ‘사이 간(間)’ 자가 들어간 건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사람에게 ‘관계’와 그 안에서 받는 인정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복지정책은 그 관계를 끊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 기저에는 가난에 대한 깊은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가난한 개인을 비난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 방에 들어앉을 ‘누군가’가 계속 바뀔 뿐이다. 방 안에서든, 밖에서든 이제는 ‘노동 이후의 삶’을 상상하고 그려내는 힘이 필요하다.


-더이상 사랑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나이가 되었을 때. 이런 글을 고민한다. 


안와가 깊고 턱이 뚜렷한, 그리고 내게 피해를 준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책망할 수 있는. 그 윤곽과 태도가 미친 듯 좋았지. 


현장에서 멀어짐과 동시에 내 언어도 깎여간다. 아주 조금씩, 사소한 것부터.  


그때의 그 이상한 열기가 그립지 않다는 것도 거짓말이겠지.


오늘 처음, 완만하게 굴러떨어지는 듯한 환자의 죽음을 봤고. 뒷정리를 하는 동안 내 과거를 알고 있는 어느 선배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선생님.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허둥거리며 연신 손을 놀렸고 선배 또한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 무거운 소란. 


모든 끝과 처음이 그렇듯, 포기하는 마음에도 각오는 필요하다.


최근 봤던 햇살 같은 영화들 틈으로 독야청청한 좆같음을 자랑했으므로 기록. Rampling의 고고한 연기를 제외하고는 장점이 1도 없음. 특히나 엔딩ㅋㅋㅋ 아 그러세요. 날 배신한 여성에게 부여되는 평생의 불행은 당연한 것이지만 곧 죽어도 깐깐한 노년 남성의 자기반성에는 박수를 줘야겠지요.  


이제 슬슬 워킹타이틀식 때깔 고운 영국영화에 대한 희망을 버려야할 듯도. 

38.

-뒷모습마저 노래하는 듯한.


상당 부분을 배우가 지닌 이미지에 기대고 있지만 영화 정말 좋더군요. 상상했던 것보다 유머와 이야기의 밀도가 깊습니다. 언어가 지닌 운율과 의미를 아는 감독이 영상과 편집, 사운드를 다루면 이런 영화가 나오겠지, 라는 생각을.


전혀 다른 플롯과 맥락입니다만 시와 언어,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Paterson이 떠오르기도.


너의 입술산이 생각보다 높았다거나 네 눈매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부드러운 윤곽이었다던가, 네겐 아이보리보다 오프 화이트가 더 어울린다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거나, 내 머릿속의 너보다 언제나 내 눈앞의 네가 훨씬 더 미인이었다거나. 이 모든 내 생각과 현실의 너 사이의 괴리를 접어두고도 너는 내가 언제 어느 때고 친한 친구, 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연이 깊고 벽이 낮은 사람이었다고. 


시작되는 너의 새로운 관계를, 시간을, 막을, 그리고 너의 결혼을 축하해.


간만에 학교에 들러 교수님을 뵙고, 아직도 졸업 안한(...) 혹은 위로 진학한 동기들을 만나고 받은 것들. 학생 공모 디자인 다이어리 시절에는 나도 몇몇 동기들과 의기투합하여 아이디어를 냈던 과거도 문득. 줄임말을 달력에 떡 하니 박아놨길래 - 내가 기억하는 옛 총장은 저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던 - 케이아츠는 포기했나 싶었는데 다이어리를 보고 흠. 모두가 칼아츠 짭이냐며 투덜거렸던.


대부분 영상이나 디자인북을 탐독하기에 줄글로 된 책을 읽는 이들이 드물어 대기 예약 없이 하루 열댓권의 책을 빌려 삼사일 만에 내리 읽곤 했던. 그렇기에 다독으로 졸업 때까지 도서관 근로장학생 - 경쟁이 치열했다 - 신분을 유지할 수 있던 기억도. 


지금보다 치열하게 희망하고, 절망하고. 더 자주 울고 웃고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했지. 


언젠가 모 동기의 야 솔직히 우리 뭣 좀 있지 않았냐? 물음에 코웃음치며 우리가 뭣 좀 있었으면 넌 이미 나랑 사귀고 있거나 헤어진 상태일 거임, 대꾸할 만큼 열정적으로 연애를 했고. 내 방 호수가 어디인지 모를 만큼 기숙사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며 생활하다 보증금 50, 100만원짜리 반지하와 옥탑을 전전하기도. 그런 내 생활을 불쾌하게 여기던 애인도 몇 있었지. 좀 제대로 된 곳에서 살면 안돼? -월세 내줄 거 아니면 입 다물어, 라 윽박지르긴 했지만 그런 누추함이 질기게 부끄러웠던 시간도 없진 않았고.


밥을 먹기 위해 선배 동기 후배의 현장을 뛰던, 가난이 그저 내 죄인 것 같았던.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모는 내 모습을 흥미롭게 여겼지만, 나는 대치동의 학원 강사였던 시절 차가 끊기면 돌아올 택시비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어 그냥 모르는 척 웃었지.  


언젠가 모님이 탐라에서 거론한 서울, 서울살이에 대한 노스텔지어는 아무런 기반이 없는 모든 지방러의 꿈이 아닐까. 신분증에 아로새겨진 서울시의 주소를 가지는 것, 그리고 그 주소를 2년 이상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지니는 것. 내가 온전히 나로서,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내 직장과 내 수입만으로 그러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나를 이룩하는 것.


이런 나 자신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또 몰라주기를 바랐던 새파란 시절의 나를.


태양은 그 환한 빛으로 어리석은 날 가르치네

당신은 따뜻한 온기로 얼어붙은 날 데워주네

언제나 아무 말 없이

그대 손으로

그대 손으로


-온기에 리듬이 있다면 이런 운율일 것이라 생각한 적이.

37.

WW를 향해 언제나 부신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무척 좋았지요.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격렬한 아름다움.   


배우 특유의 능글능글함을 잘 활용한 흥미로운 케릭터였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 마지막에는 불만이 많습니다. 저는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1회용 여성 케릭터의 엔딩에 주어지는 내면으로의 침잠을 거의 본 적이 없으니까요.


또한 배우의 개인적 매력을 한껏 살린 최상급의 케릭터이며 - 감독이 치밀하게 계산한 인물과 연기 연출을 바라보는 즐거움이란 - 흥겹게 연기하는 것이 눈에 보여 특히나 더 좋았지만, 극와 역할에 비해 지나치게 비중이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더군요.


소비되는 1회용 남성 케릭터를 다루는 더 많은 매체가 나와야하지 않을까, 하고. 미디어가 늘 그렇듯, 활용 뒤에 흐름이 있으며 호응이 있고 연구가 뒤따른 뒤 결론이 맺어지지요.    

36.

자신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는 일만큼 기이한 객관화가. 


인간은 상상력을 지닌 동물이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진을 두려워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코끼리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


그 일로 얼마나 벌고, 누구의 선망 혹은 경멸을 받든. 저는 언제나 스스로가 하는 일 - 그렇기에 일이 없으면 자존이 무너지기도 - 에 대한 자긍심을 지니고 있었기에 자의 반 타의 반 그 일에서 통채로 도려진 듯한 작년 몇달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 눈을 낮추고, 공공기관 몇군데에 입사 지원을 하여 그 중 한 곳에서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습니다. 현 대통령이 제창한 블라인드의 수혜를 몸소 받은 입장인터라 저보다 뛰어난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뺏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만큼 그 다음을 위해 제가 버티고 개선해야 할 길이라는 마음을 다져봅니다. 오늘 하루는 이 생각만으로 저는 배부르게 행복할 것 같네요.


염려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온전합니다, 모쪼록 무탈히 웃는 하루 이시길 바랍니다.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은 비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고, 소비에트인이 된다는 것은 낙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비에트 러시아라는 말은 용어상 모순이었다. 권력층은 이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인구 중에서 필요한 만큼을 죽여 없애고 나머지에게는 선전과 공포를 먹이면 그 결과로 낙관주의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 어디에 논리가 있는가? 그들이 그에게 여러 가지 방식과 표현으로, 음악 관료들과 신문 사설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대로, 그들이 원했던 것은 '낙관적인 쇼스타코비치'였다. 용어상 또 하나의 모순이었다.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 - 우리 존재의 음악 - 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35.

-소유한 얼굴과 부여되는 이미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은 밤이다. 그런데 그와 함께 있으면, 빛조차도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 된다.


모쪼록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34.

-그의 차에 탄 채로 이런 질문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어쩌면 내가, 어쩌면 그가 술이 결정해 주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날 저녁 내내 서로가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술기운이 결정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와인 병을 따거나 음악을 바꾸면서 시선을 돌리는 그를 떠올리며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역시 내 마음에서 질주하는 생각을 파악할 것이고 그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아내나 나 자신을 위해 와인을 따르면서 마침내 우리는 깨달을 것이다. 그가 나보다 더 나 자신에 가까웠음을. 오래전 침대에서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되었을때, 삶의 모든 갈래길이 제 역할을 다 한지 오랜 후에 그는 내 형제이자 친구, 아버지, 아들, 남편, 연인, 나 자신이 되고 또 영원히 그러할 터였다.


"나도 너와 같아. 나도 전부 다 기억해."


나는 잠시 멈추었다. 당신이 전부 다 기억한다면, 정말로 나와 같다면 내일 떠나기 전에, 택시 문을 닫기 전에, 이미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이 삶에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장난으로도 좋고 나중에 불현듯 생각나서라도 좋아요.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테니까, 나를 돌아보고 얼굴을 보고 나를 당신의 이름으로 불러 줘요.


호명, 인지와 동시에 혀끝에서 구르는 우리 관계의 의미.


"People forget what you say, but they remember how you make them feel. Warren Beatty. And right now, you make people feel like you're gonna shoot them. People don't like you. But that's okay. Since love and fear can hardly exist together, if we must choose between them, it is far safer to be feared than loved. That's Warren Beatty as well. No, it's not. It's Machiavelli."


기대는 배신당하고 의도는 희석되는데다 비현실적으로 말랑한 결말이 저를 좀 아프게 했지만, 초췌한 얼굴로 더비를 피워 올리며 나는 미친 사람이고 그런 나를 납득시키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 그냥 내 능력이나 믿어, 라 주장하는 Bullock의 연기 하나만으로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왕될 수 없는 자를 왕으로 옹립하는 모든 그늘의 조력자들. 현대의 선거전이야말로 가장 첨예한 홍보의 경연장이라 이야기했던 옛 동료의 언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Kill Switch에 Marlohe까지?

33.

서사란 관중 앞에 선 이야기꾼이 지녀야할 가장 큰 무기이긴 하지만, 때로는 인간과 삶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수천 수만의 이야기를 - 비록 기승전결은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허나 탄생과 죽음 외의 온전한 시작과 종결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 대신할 수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욕심을 내고, 그렇기에 되풀이하여 다루어지고, 관점에 따라 시선을 틀지만 큰 방향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인간들, 의 품위가 빛을 발했던 몇 안되는 순간을 다루며 감독은 수많은 개인과 집단을 빌어 자신을 털어놓습니다. 


짧은 연결의 순간을 지니는 플롯 셋의 큰 뿌리를 통해 감독은 이런 일이 있었다, 라는 여느 에피소드로 마무리됨이 아닌 인류사 전체를 관통하는 메세지인 개인의 신념이 집단을 이룬 상태의 호전성, 그에 부가된 긍정성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삶이 지속되는 한 어디에도 절대적인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 이런 감독이 전무후무한 조커를 만들었고 - 우리는 또한 저열한 존재이기도 허나 때로 신념에서 피어오르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고결한 존재이기도 하다, 라고. 


저는 언제나 전자쪽에 손을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그 위로와 연설에서 밀려오는 감정이 없지는 않았다는 것이.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장미가 가장 아름다움은 지당하고. 


제가 배우라면 정말 한 번쯤은 욕심을 내었을. 


지금까지의 전작이 그러했듯 감독이 이끌어가는 전개를 쉽게도 예상했음에도 최대한 스스로의 목소리를 절제하고 인물들을 이야기한 것 또한. 그렇기에 오히려 이 낯설고 새로운 - 익숙한 얼굴들이 주는 묵직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배우들이 부각된 것이 저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배경 음악은 문제가 많았지만 사운드와 편집의 합이 무척 좋더군요. 언뜻 거칠 수도 있는 편집의 앞뒤를 굳건하게도 떠받치는 무게감 있는 사운드.   


이런 젖고 서늘한 스코티쉬 금발 미인 조종사가 Afternoon, 을 한다고 왜 아무도 내게;_;?


조종사를 보는 순간 소년의 얼굴에 첫 눈에 반하다, 의 감정이 드리워지는데.


참전해 전사한 형과 과거를 지닌 아버지의 그림자를 동시에 보는. 

32.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잔.


누구든지 벨 수 있는 검.

31.

작은, 그렇지만 내게는 큰 도전 하나를 준비하느라 남자와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한 시간 간격으로 동료들과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다시 치우고, 디저트를 사오고, 다음날 아침의 엉망이 된 스튜디오까지 일일히 중계하던 남자는 몇번이고 되묻는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나는 언젠가 한동안의 고민 뒤에 남자에게 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나는 지금까지, 아니 지금도 사실 나는 내 멍청함에 대한 공포가 정말이지 커. 나는 단 한 순간도 멍청해질 수 없다고 말이야. 어떤, 내가 생각하기에 과분한 자리가 내게 주어지면 나는 도저히 이 자리가 내 것일거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 멍청해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는 나 스스로가 이미 내가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였어. 내가 멍청하지 않다는, 내가 이 자리에 맞는 사람이라는 누군가의 칭찬이 없으면 나는 걸어나갈 수조차 없었던 거야. 지식이란 내가 쌓는 것이지 누군가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잖아. 내가 첫 만남에서 내 외모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어려워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나는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은 내 외모가 아닌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가꾼, 내가 멍청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주길 바랐어. 지금껏 내게 그런 컴플렉스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사실 내 멍청함으로 인해 누군가로부터 버림받는 것이 두려웠던 거야. 이건 할아버지로부터 기인한 것이겠지.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나는 전혀 다른 분야를 시작했고- 이제는 지금까지 쌓아온 내 지식이나 인맥이나 외모가 아닌, 내가 일한 결과 하나로 평가받고 비난받고 칭찬받고 어쩌면 호감을 얻을 수도 있겠지. 나는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나를 좋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누군가 내 지식이 아닌 외모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거지. 누군가 나를 싫어하더라도 내가 그럴 수 있을 만큼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들은 언제나 누군가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지. 무언가가 모자란 사람들을 위해 많이 일하고, 적게 받고, 다시 받은 돈을 나누고. 누구도 비난할 수 없을 만큼 그저 그들과 함께 하는. 나는 지금까지 정면으로 나 자신과 맞선 적이 없었던 거야. 내게도 노력은 필요해. 시간이 필요해. 이기적이란 걸 알지만, 그래서 정말 미안하긴 한데. 내가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 기회를, 그러니까 시간을 좀 줬으면 좋겠어.   


남자는 한숨을 쉬었고. 그 시간으로 인해 우리가 서로 영원히 헤어지게 되어도? 나는 조금 머뭇거렸지. 거기까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만약 그렇게 되면 내게 다시 이야기를 해주겠어? 최대한 생각해볼게. 조금 웃었던 것 같기도 하지. 적어도 네 그 시간들에 헤어짐이라는 가정은 없는 거네. 그러면 됐어. 너는 괜찮은 거지? 정말 괜찮아? 그 때와 동일한 어조의 괜찮냐는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현재 읽고 있는 책을 찍어보내거나, 보고 있는 영화의 마음에 드는 대사를 써보내거나 웃는 이모지를 보내거나 하며.


홀로 조용하고, 그러나 외롭지는 않은. 만족스러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굳이 영어 나레이션과 서양인 - 좋은 학벌을 지닌ㅋ - 의 관점을 빌릴 필요가 있나 싶을 만큼 - 일본식 사대주의란 - 그 자체로 완성된 삶의 모습이지만 메인을 점하고 있는 참치 경매장에서 일하는 여성 중간 도매상은 단 1명도 없으며 부자재 측에서만 겨우 1명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내내 되풀이되는 그들彼ら이라는 표현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또한 감독이 자랑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몇대를 이어 내려온 관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프로. 속는 것은 본인의 잘못'이라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그 켜켜이 겹을 이룬 카르텔이란.


재료의 중요성과 그를 대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룬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경외를 다루고 있음에도 제겐 일본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어 흥미로웠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량한 케릭터, 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는 것에 격세지감. 영화는 잔잔하고 아름답고 서서히 일렁입니다. 다시 월요일을 시작하는 Paterson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감동이란.


제가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왜 굳이?의 장면이 지나치게 많은데다 이런 식의 스토리 텔링이라면 저라면 극영화를 쓰고 그의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CG와 유화를 함께 도입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더군요. 그저 거대한 낭비.


그림과 목소리만으로 그 배우들을 온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 조금 흥미로웠나. 그 인물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Poldark;_;이 떠오르기도 했고.


"나는 세상이야. 나는 변하지 않아."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은 모조리 여성 케릭터에게 떠맡기고 + 종국에는 그 부조리를 견디지 못한 소년 케릭터가 그를 없애버리는 정말 기념할 만한 여혐 영화이지만 성장도 뭣도 없고 아 시발 희망이고 뭐고, 라는 감독의 태도와 촬영과 조명, 미술, 시대적 상황에 천착하는 그 취향이 정말이지 좋더군요. 그 디테일만으로 3시간 57분을 버틸 가치가 있는. 


각설하고, 정말 좋았습니다.


리부트 따위로 기존의 인물을 지우기에 급급했던 시리즈들과는 달리 이토록 정중한 - 너무나 지극한 팬이기에 부여할 수 있는 - 디딤으로 마련된 엔딩이라니. 그들은 영원히 남아있는 전설이 됨과 동시에 모든 전설이 그러하듯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스스로는 절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게 되겠지요. 어떤 질긴 과거를 지녔던 지난 시간들은 닫히고 새로운 인물들을 위한 미래는 열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라면 general도 없앴을 테지만, 일단은 구심점의 역할이. 


레이의 기반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또한. 가능성을 지닌 모든 자들, 어쩌면 주어질 수도 있는 기회.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빗자루로 라이트 세이버의 흉내를 내고, 우주선을 타고 싶어하고, 눈에 들어오는 별을 향해 나아가지요. 그 별빛을 손에 넣기 위해. 


특히나 스노크를 썰고 난 뒤 레이와 등을 맞대고 전투를 준비하던 벤 솔로의 모습은 제 올해의 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은. 


선천적 재능이 없는 자들을 보는 관점에서 엑스맨 생각이 정말 많이 난.


길게;_; 쓰려는 마음에서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