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痴人の愛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먼저 말을 꺼내는 용기인지, 꺼내어진 말에 목소리를 더하는 동조인지, 다만 잠잠히 그 이야기를 듣고 지금을 헤아릴 수 있는 인내인지를 가늠하는 즈음. 부디 과거와 미래 모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셋의 현재이기를.
랩탑이 며칠 고장났었고 때맞춰 킨들도 수리를 보낸 터라 여유 시간에 뭘 할까, 생각하다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언어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몸이 아는 것을 좀 더 늘리고 싶은 마음에. 있는 악기에 우선적으로 나를 맞추는 기술과 연주가 아닌 내 개성에 악기를 맞출 수 있는 음악을 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었구나, 나날이 깨닫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크네요. 놀랍기도, 재미있기도 하고.
어쩌면 이 음악은 개인의 기록이 아닌 선보일 수 있는 무언가, 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제 연주가 일천하여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부끄럽지 않은 그저 도중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무난하게 - 거장의 작은 영화는 관객의 준비를 필요치 않는다는 좋은 장점이 - 잘 그려진 영화로 별 놀라운 것은 없었습니다만, 타인의 연기로 이미 사라진 타인의 연기를 예측해볼 수 있다는 생각치 못한 부분이 눈에 띄더군요. 폐허에서 꿈을 꿀 수 있는 호인이었으나 수많은 배신을 통해 타인에의 벽을 쌓은 것으로 표현되는 Plummer 이전, Spacey가 그려낸 Getty의 이미지는 뼛속부터 냉정하고 냉혹한, 철의 사업가 쪽에 가깝지 않았을까, 혼자 더듬어 봅니다. 제 이런 섣부른 예측과 걱정은 직접적인 부딪힘을 만드는 배우의 모습이 통채로 사라졌음에도 묵묵히 지친 어머니와 피로한 며느리, 그리고 결단력 있는 판사의 딸과 파산 직전임에도 고고함과 자존심을 잃지 않는 Señora Harris와 Mrs. Getty를 동시에 보여주는 Williams의 훌륭한 연기 속에 조용히 녹아들고.
그저 내지르고 화를 내며 휘청이기만 하는 Wahlberg의 연기는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은 구석이.
자신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멋지게 구현한 것에 크나큰 박수를. 장점도 단점도 눈에 확연한 영화이지만 때로는 이런 영화에 말을 붙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영화는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특정 문화 전반에 힘을 실어주곤 하지요.
특징을 부여하려다 오히려 따로 놀게 된 사운드는 문제가 많았지만 촬영과 조명, 더불어 분장이 구현해내내는 색감이 정말 좋더군요. 특유의 피부를 최대한 세밀하게 표현하게 위해 일부러 색온도를 낮추고 광을 더 표현해내는 기법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유이한 백인 배우 몇이 지나치게 칙칙해 보일 정도 였으니. 지금까지의 백인 위주의 영화에서 특정 부류 - 여전히 저는 이들에 대한 올바른 명칭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 사람들의 얼굴이 얼마나 검게, 그저 뭉개져 보였는지를 새삼 상기하게 되더군요.
T’Challa에 비해 Killmonger의 연기를 좀 더 높게 평가하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면 제가 얼마나 백인 문화에 물들어 있나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일반적인 왕제가 아닌, 종족들의 화합의 상징인 족장으로서의 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T’Challa에 비해 Killmonger의 연기 - 배우의 훌륭함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다만 그 방식이 - 는 단지 피부색이 더 짙은 햄릿이었을 뿐이니까요. 그 익숙한 미국식 발음은 말할 것도 없고.
옳다고 생각했으며 혹 지금 현재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바뀌기를 원하는 일을 앞장서서 하다 스스로 나와야 했던 직장이 있다. 모두가 좋다고 이야기했으며 나 또한 시작한다면 이 곳이기를 바란, 어느 드문. 꼬박 3년을 노력했던 장소를 고작 석 달 만에 벗어나며 생각했다. 후회하고 또 후회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옳은 일을 한 것이라고, 지금 이 후회만큼 바뀌는 것에 뿌듯할 수 있는 시간은 반드시 올 것이며, 와야 한다고.
다시금 많은 것들을 희생하여 얻은 새로운 직장의 새로운 사람들 또한 알맞은 교육 시간을, 최저 임금을, 정당한 대우를 이야기하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동조를 바라는 그 울림에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잠깐 귀를 닫은 채 생각에 잠긴다.
다시 목소리를 높인다면 나는 늘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침묵한다면 나는 영원히 과거에 떳떳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겠지. 누군가는 이야기하고 다른 누군가는 동조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있던 옛 직장의 사례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들 앞의 나는 여전히 가는 침묵을 고수한다. 온통 잃을 것 밖에 없었던 과거의 후회를 곱씹으며, 무릎 아래가 모두 사라진 듯 설 수 조차 없었던 시간을 되새김질 하며, 오로지 가능성 하나만으로 미래의, 그렇다고 지금 내가 쥔 현재의 어떤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영원히 싸워나가는 사람의 대단함이란 이런 것이다. 자신의 과거와 독대할 수 있는 떳떳함, 어쩌면 나아질 수도 있는, 어쩌면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의 실낱 같은 가능성을 위해 현재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 그 벼락 같은 강인함.
미래와 현재의 자신과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내일의 저는 한 마디를 더 이야기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자그마한, 어쨌든 내 활동반경에 맞는 전세를 구했고 집주인에게 애교 있게 인사 잘 하란 이야기를 팁처럼 알려주는 부동산 중계업자에게 ?라는 표정과 일단 알겠다는 대답을 보냈으며 그렇게 살았으니 지금까지 책임감 없이 정착도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거 아니냐, 내게 막말을 하는 책임자에게 ?라는 표정과 함께 어쨌든 내 잘못이니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턱없이 부족한 시스템은 사람을 탓하게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상처가 되기도, 또는 상처가 되지 않을 만큼 하찮고 미미하지만 눈치채지 못할 만큼 옅은 흉을 만들기도.
누구도 상상하길 원치 않는, 그리고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이후의 오래도록 누추한 이야기.
이따금 배우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는 때가 있습니다. 눈 앞의 생계보다 보다 먼 꿈을 선택한 부류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 첫번째는 역시 매혹적인 이야기, 두번째는 관련된 돈이었을까요. 또 다른 접근으로 첫번째가 계약이었을 가능성도 농후하고.
이 영화 역시 왜, 의 맥락은 이해가 가지만 어째서, 를 설명하지 못하는 뻔한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일종의 Einstein-Rosen bridge 역할을 하는 건물을 세우고 에너지장 - 무슨 에너지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도; - 으로 두 개의 우주를 교차시킨다는 아이디어는 흥미롭지만 움직이는 인물들의 당위는 허섭하고 이야기는 한심합니다. 배우와 배경과 CG와 촬영 모두 낭비되지 않은 구석이 1도 없지만 오로지 사운드가 좋습니다. 모두의 우주와 나 혼자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주, 즉 내게로 매몰되는- 그러므로 관객에게 쏟아지는 1인 우주의 사운드를 구현해내는 방식이 마음이 들어 사운드 슈퍼바이저도 제대로 명기되지 않은 스텝롤을 한참 바라봤었네요.
눈에 든 배우 몇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제 시간과 돈을 투자할 이유도 없을 영화였지만 에너지장의 폭발을 바라보며 It's working, 이라 중얼거리는 Stevens의 새파란 망막에 맺히는 불꽃을 바라봤던 즐거움을 부정할 수는 없겠네요. 이렇듯 애정은 소비를, 감정을, 마음을, 때로는 눈 먼 맹목을 만들곤 합니다. 배우를 보는 기쁨과 그들이 몸담은 영화에 대한 평가를 분리하기 어려워지는 것처럼요.
-너는 일렁이고.
지금 내가 너를 용서하는 까닭은, 어디서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계속되어 왔던 비겁함이라는 반사신경 때문이다.
메마른 나무 가지 같은
너를 끌어안고 서서
쏟아내고 있는 눈물도
뿌리치듯 날 밀어내
네게 다가갈 수 없는데
나는 출렁이며 차올라
네게 넘쳐버리게
무책임한 그대는
매일 얼굴을 바꾸네
내게서 도망치지 말아줘
나의 세계는 너로 세워지고 무너진다
모른 척 하고 있잖아
아무래도 좋을 결말 따위
내게 상처 주게 허락 할 테니
다시 걸어보게 해줘 사랑에
난 이미 손 쓸 수 없게 돼버렸지만
멋대로 그대를 원하고 있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냐
난 이미 사랑에 빠져 버렸지만
나는 자꾸만 더 야위고 깊어만 지네
날카로운 달빛에
달빛에 비친 유리창도
“I have had a long career and a good one. In good company. Now here, at the end of it, I really don’t want to watch American literature get sold down the river. We who live by writing and publishing want — and should demand — our fair share of the proceeds. But the name of our beautiful reward is not profit. Its name is freedom.”
제가 경애하는 어느 작가의 서문 중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제 미력한 글 몇줄이 여러분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쳤다면 제 인생 전반기의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창작은 1차적인 것이지만 여러분의 변화가 그리고 다음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세계를 넓혀주어 감사합니다."
자신의 상상으로 타인의 꿈과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창작자와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많이 아쉽고, 마음이 아프네요. RIP, 그리고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 모두 평안하길.
Le Corbusier야 오랫동안 내 사랑이었지만 비교적 원목에 대한 - 정돈되지 않은, 손길이 덜 닿은 듯 - 관심은 떨어지는 편이었음. 허나 오늘 Nakashima의 의자를 실물로 보고 정말 놀람. 내부로 끌어들인 외부의 날 것, 밀폐된 공간 속에 다시 열린 공간을 더하는.
물론 온전한 활용을 위해서는 정도 이상의 공간이 요구되는, 가구 그 자체의 기본은 어딘가로 내버린 듯한 실용품이지만 앉아도 불편하지 않았던 예술- 공예품이라는 점에서.
건축을 아는 디자이너들의 손 끝에 깃들곤 하는 은은한 입체감과 공간의 중첩은 제가 환장하는 종류 중 하나지요;_;
모님이 짚어주셨듯, 제 취향의 결정체 Marianne Brandt.
오랫동안 면식은 있다 최근 급격하게 가까워진 어느 분이 계신데. 무척 좋아하고 동경하는 분이지만 풍요를 타고 자라나 외국에서 석박을 밟고 한국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경력과 직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행복을 상상하기 힘들다는 그 분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 때가 있다. 잠시 내 고시원에 들렀다 마주 앉은 카페에서 힘들게 힘들게 꺼내신, 세상에 난 그런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어. 그 말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던 내 당황 만큼 그 분의 세계도 좁았던 걸까.
드문 휴일이나 내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의 집이나 좋은 레스토랑, 재미있는 공간에의 초대를 건네곤 하시는데, 오늘은 혹은 이번은 집에서 쉬겠노라 정중한 답변을 돌려드릴 때면 실로 의아한 반응이 직설적으로 닿아오곤 한다. 그 방에서 쉰다는 것이 가능한 거야, 정말?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데다 모든 낯섦은 익숙해지길 마련이고 전 제 이런 삶을 즐길 수 있는 만큼 오래 누추했으니까요, 라는 말을 입안으로 밀어넣으며 대꾸한다. 그냥 제가 피곤해서요. 다음, 다음에요.
당신을 향한 내 호감과 나에 대한 당신의 호감이 서로가 지닌 환경과 배경과 자리와 안목에 대한 미묘한 경멸의 임계를 넘지 못하는 때가 오면, 우리는 헤어지게 되는 것일까요. 연인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게, 그저 사회에서의 가는 인연 하나가 끊어진 것마냥 건조하게.
-언젠가 다른 모님과의 대화가 문득. 모님의 취향이 이것까지는, 의 하한선이었다면 내게 취향은 이것만은 기필코, 의 상승지점이었다고.
그 많은 뒷말과 폄하의 시간에도 단 한 번도 관객의 시선을 피한 적 없는.
The Death Cure를 봤습니다.
내 입맛에도 정말 맛있는 것과 이건 뭐지? 를 번갈아 먹었고, 영화에서조차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시시각각으로 반복되었기에 가능한 좋은 점만 추려 적으려 노력을.
1. Lee의 연기는 여전히 문제가 많으나 1편과 비교한다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단순히 비중이 적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2. Brenda의 액션과 발성이 무척 좋았습니다. 더 비중을 주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로.
3. Thomas는 그 Thomas로 쉼없이 뛰고 결심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후회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많은 희생을 낳으면서도 끝까지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제겐 좋은 점도, 싫은 점도 잔뜩이었네요. Teresa에게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기회가 수도 없이 부여되니까요.
4.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이 치열하게도 두드러지는 것이 참으로. 보다 넓은 것을 볼 수 있는 어른은 먼 숫자를 이야기하지만 아직 덜 자란 아이는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부릅니다.
5. Gally 나왔을 때 비명 지름.
6. Newt... 동조도 감염도 변화도 여남은 삶도 죽음 - Teresa의 것과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아 관객의 감정 이입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든 - 도 ???였지만 마지막 편지가 준 울림은 적지 않았던 것으로.
7.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이었던. 나의 죄, 나의 영혼. 그리고 이제는 없는 너의 목소리, Newt.
8. Eva는 아슬아슬했지만 Janson이 좋습니다. 워낙 제가 좋아하는 얼굴과 연기이기도 하고.
9. 대열차강도의 오마주에서 시작되는 시퀀스부터 감독이 작정을 했구나, 싶었지만 퍼부은 자본에 비해 플롯은 빈약하고 이야기의 설득력은 떨어지며 - 씬과 시퀀스의 강약 조절 문제가 심각함 - 인물들은 어이없는 구성으로 사라집니다. 애쓰는 배우들의 모습이 아쉬울 정도였네요.
10. 감독조차 결정짓지 못한 Teresa의 행동에는 그 어떤 당위도 명분도 없고. 완전히 옳지도 나쁘지도 자신의 일에 신념을 가지지도 온전히 아이들을 배신하지도 못하는 모습들에 더불어 두 번째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11. 수많은 연구원과 장비를 두고 왜 저런 효율 떨어지는 방식을?
12. 일은 아이들은 이루고 일장 연설은 어른이 해대는ㅋ
13. 촬영은 심심하고 사운드는 무난합니다. 별 재미가 없었네요.
14. 1편의 장점은 대부분 사라진대다 완결이라는 느낌조차 - 우리는 헝거시리즈의 걸출함을 기억합니다 - 없는 어색한 결말이지만 그럼에도 장점이 완전히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온전한 세계를 이루고 난 뒤 Thomas가 읽어내리는 Newt의 편지와 그 눈물, 홀로 세워진 비석 위의 이름들에 그들이 밟고 선 희생을 기억하는 관객들이 있지요. 지금까지 이 시리즈를 잘 따라와준 관객을 믿는 젊은 감독입니다.
15. 기이하리만큼 좋았던 1편, 개성은 엿보였던 2편, 미묘한 3편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이 젊은 감독의 이상과 순수함이 저는 이상하게도 싫진 않았었네요.
16. 우선은, 감독의 다른 영화를 기대해봅니다.
튤립을 선물하고 싶어 약속을 잡자 하면, 당신은 여느 때처럼 호탕하게 웃어주시련지요.
-보는 것만으로 드라마를 상상가능한.
It used to feel like heaven
It used to feel like may
I used to hear those violins playing heart strings like a symphony
Now they've gone away
Nobody wants to know the truth
Until their hearts broken
Don't you dare tell them
What you think to do
Till they get over
You can only learn these things
From experience
When you get older
I just wish that someone would have told me
Till it happens to you
Till it happens to you
Till it happens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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