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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혹은 제대로 된 금액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망설였다. 이러이러해서 좋다, 라는 문장을 완성하기에 앞서 나만 아는 몇가지들로 인해 내게만 좋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먼저 들어. 티켓을 사서 다시 영화를 보고, 순간 순간 터져오는 관객들의 웃음, 한숨,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 가뿐함에 십분 공감하며 이 영화가 정말 괜찮은 영화라는 사실이 엄청나게 기뻤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모두에게 멋진 영화라니, 내 과거가 드리운 몇 안 되는 근사한 순간 중 하나가 아닐지.
언젠가의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주 쯤의 가출을 행했다. 어딘가에서 덜미가 잡혀 경찰과 함께 학교로 돌아왔을 때, 주임 선생이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디어디를 다녔나?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전국 어디든 재워주는 사람이 있는 곳을 쏘다녔다. 조부의 옛집 근처에서는 노숙을 하기도 했다. 주사를 부리는 가장이 있는 집을 처음 접하기도, 그를 피해 옷장 안에 숨어 있으라는 친구의 말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어깨만 토닥여 준 기억도 있다. 배낭 안에 늘 몇개의 카스테라를 가지고 다녔고, 집을 나온 줄 모르는 어느 친구의 부모님에게 이런 걸 사오다니 어린애가 교육을 잘 받았네,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어느 분과 함께 수족관에 갔고, 처음 가본 노량진에서 회를 먹기도 했다. 그 분이 조근조근 내 손에 쥐어준 기차표를 환불하고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으며 죄책감과 어지러움을 함께 느꼈다고. 제주는 밝고 따뜻하고 아름다웠다고. 옥색 바다와 천혜향이라는 과일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이야기를 줄줄줄줄 늘어놓자, 어이없이 나를 바라보던 선생이 대꾸했다. 그럼 너는 진짜 여행을 한 거네?
그는 열일곱 여자애의 이주 간의 가출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온전히 스스로를 위한 시간과 장소를 애써 만드는 과정, 난 언제나 여행이란 여유를 뜻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미 어떤 자리를 지닌 이들이 다시 한번 다른 환경과 자극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어떤 간격, 혹은 돌아갈 곳이 있는 자들이 주는 특유의 가벼움 같은 것들. 이는 부유하는 스스로의 시간과 장소를 여행, 이라 칭하는 미소의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을 잃지 않으며,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고, 그렇기에 어떤 누구에게도 가장 깔끔한 타인으로 남을 수 있는. 위스키와 담배를 좋아하고, 자신의 직업을 가사도우미라 망설임 없이 이야기하며, 그만큼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기에 타인을 알고, 아끼고, 위로하고, 상처를 받지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는.
전개를 위해 도식적으로 그려진 케릭터와 지나치게 진부한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할 만큼 이 영화의 미소가 너무나 품위 있는 케릭터였다. 자존이 아닌 스스로의 오만함으로 타인에게 폐나 해를 끼치는 주인공을 적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한국영화 시장에서, 정말 상기할만한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사람을 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 환경이나 그를 둘러싼 조건이 아닌 스스로가 만드는 자신임을, 새삼.
-올 해 본 영화 중 가장 좋았음.
무척이나 흥미로운, 정말 준수한 영화였지만 나는 The Edge of Seventeen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 영화에 그렇게까지 마음이 가지는. 하지만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좋아해줬으면 - 사랑의 까탈스러운 포용과는 달리 좋아함의 그 자연스러움, 마음이 맞음, 그 관대함에 대한 - 좋겠어, 라는 대사와 공항 근처를 도는 그 짧은 순간에 깃든 표정만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Metcalf의 연기가 주는 울컥임의 결이 얕았던 것은 결코 아님.
많은 말을 해본 적 없는 직장 동료와 몇몇이 다 함께 밥을 먹다, 어느 식당에 대한 화제에 언뜻 덧붙인. -제 입맛에는 좀 별로더라구요. 한 마디에 그 동료가 웃으며 대꾸한, 이 선생님이 별로라는 걸 보니 진짜 별로인가 보네, 라는 말에 조금 스산해졌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나를 보고, 또 정의내리기도 하는 구나, 라고.
선산이 있는 집성촌에서 자라난 탓에 화장은 드문 문화였고, 조부도 아버지도 봉분을 했다. 문득 문득 그 소담한 무덤 아래 조부도, 아버지도, 이제는 썩은 관과 흰 뼈만 덩그러니 남아 흙 아래 자리할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든다. 한 때는 나와 같은 육체와 나보다 더 많은 세계를 지녔던, 이제는 내가 꼭 닮은 그 골격만이 그 얼고 진 땅 어딘가에.
죽은 사람에 대한 미련을 산 사람의 질척임이라 여겼던 조부가 자리 보전을 했던 내내 화장을 주장했던 이유를.
이 일을 시작하며 나는 암이라는 질환을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품위 있는 선고라, 살짝.
-건축과 John Cho라니, 난 이미 졌다;_; ;_; ;_; ;_;
단 것에 약하기에 자주 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사다 놓거나 먹고 와 일주일쯤은 늘 행복해하는 Conversation.
밤새도록 술과 담배에 절어 와르르 웃고 웃으며 타인의 살도 좀 만지작대다 문득 창 밖을 내다봤을 때, 밤도 아침도 아닌 어스름한 푸름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이 있지요. 방종에 젖은 내 열정과 젊음이 사랑스러운 한편으로 미약한 죄책감과 더 깊은 공허와 허탈함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저는 이제 이런 순간을 담은 종류의 영화를 그저 좋다, 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연륜이 되어.
원작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음에도 68세대의 이상으로 빚은 듯한- 오만하고 어리석은 나를 끝까지 이해해주며 사랑해주는, 어리고 죄없으며 다재다능하고 아름다운 미성년인 Elio는 같은 설정의 소녀와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백만가지쯤 보아왔던 제게 굉장히 불편한 인물 - 복숭아에 대한 시퀀스에서 사과를 하는 장면이 게 중 최악. 명백한 성희롱자에게 부여하는 권력관계의 우위 - 이었고. 고고학을 전공하는 교수라 일컬어짐에도 미성년자의 욕망을 멋대로 이용하고 끝끝내 어느 것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미숙함을 배우 본연의 매력으로 메꾸어나가는 Oliver를 보여주는 방식도 좆같았으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두 이용당하고 버림받았음에도 여전한 친구 - 어머니와 같은ㅋ - 로 남아주는 Marzia를 드러내는 것도, 매력적인 외양은 한 때이고 그 시기가 지나면 아무도 네게 다가오지 않는다ㅋㅋㅋ는 따위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해대는 아버지도 제겐 그저 개좆같은 케릭터일 뿐이었네요.
구도과 조명과 색감, 그리고 미감과 스코어는 좋았습니다.
올 해 본 3편의 영화 - 더 쉐입, 콜미, 더 포스트 - 에서 Stuhlbarg가 나왔던 것이.
아, 올 해의 역겨움 드립니다.
절대 객관적이 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는 외부의 위협에 의한 인류의 존망이 지상 위에 자리한 인간의 욕망으로 넘어가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del Toro의 음울하고 기괴한 미쟝셴과 서사를 상당히 잃고, A. Heinlein과 일본 특촬물,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 awakening force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침없이 한 길을 향해 내달립니다. 왜 굳이 괴물Kaiju을 거대 로봇Jäger으로 상대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변에 상당한 힘을 들였던 전작과는 달리 Kaiju Blue고 자시고 그냥 그러는 게 인간의 로망이라서, 라는 맥락으로 이어지는 플롯과 제가 상당히 꺼려하는 소년병 - 그를 스스로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 을 소재로 들고 오는 과정에는 오래도록 팔짱을 껴야했지만, 하염없는 내면의 늪을 보여주는 Geizler의 헛웃음과 시기 적절한 Scraper의 등장, 전작의 메인 테마를 그대로 변주해서 사용하는 원씬원컷에 제가 오열하지 않기도; 불가능했습니다.
오랫동안 영화 제작을 맡아왔던 제작자가 처음으로 감독에 도전한 작품답게 영화는 각종 설정을 위한 설정과 그럴싸한 오마쥬와 표절과 어디서 본 듯한, 너만 아는 듯한, 그래서 어쩌라고?가 수 차례 반복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자신이 다다라야 할 목적지를 잃진 않습니다. 전작과는 달리 심히 진지해지지 않고, 결코 심각해지지도 않지요. 이따금 전작이 마련해놓은 설정을 귀찮다는 듯 모두 내던지기도 하고, 경쾌하리만큼 산뜻한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러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는 감독과 제작자,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크루의 노력이 엔딩이라는 한 점을 향해 집중되는 순간 - 그 '일본'에 대한 엄청난 경의라니ㅋ - , 터져나오는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오타쿠의 욕망과 능숙한 제작자, 그러나 초짜 감독의 열정, 아시아의 자본이라는 그 기이한 에너지가 엄청납니다.
미치도록 좋은 점과 불편한 점, 도대체 왜?가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엄청나게 호오를 탈 것으로 쉽사리 예상되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몇몇의 인간이 돈지랄로 만들어진 로봇을 타고, 우주 어딘가의 반대편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적을 무찌르고, 누군가는 적들에게 동화되고, 그리고 다른 인류는 힘을 합쳐 방어선 - Pan Pacific Defense Corps라구요! 세상에 - 을 구축하는. 저는 이런 종류의 낭만에 언제나 항복하는 편이니까요.
What if, what if we run away?
What if, what if we left today?
What if we said goodbye to safe and sound?
And what if, what if we're hard to find?
What if, what if we lost our minds?
What if we let them fall behind and they're never found?
And when the lights start flashing like a photobooth
And the stars exploding, we’ll be fireproof
My youth, my youth is yours
Trippin' on skies, sippin' waterfalls
My youth, my youth is yours
Runaway now and forevermore
My youth, my youth is yours
A truth so loud you can't ignore
My youth, my youth, my youth
My youth is yours
What if, what if we start to drive?
What if, what if we close our eyes?
What if we're speeding through red lights into paradise?
'Cause we've no time for getting old
Mortal body, timeless souls
Cross your fingers, here we go
And when the lights start flashing like a photobooth
And when the lights start flashing, flashing, flashing
And when the lights start flashing
My youth, my youth is yours
Trippin' on skies, sippin' waterfalls
My youth, my youth is yours
Runaway now and forevermore
My youth, my youth is yours
A truth so loud you can't ignore
My youth, my youth, my youth
My youth is yours
냉장고 소음 이야기에 문득. 내 기억 속 첫집은 기단 위 대청을 끼고 사랑방과 건넌방이 나란히 놓인 평범한 기와집으로, 부엌이 무척 낮고 처마가 깊었다. 원래 못이었다는 집터는 최대한 단을 낮추고 구들을 넣었음에도 사시사철 습했고 초가을부터 늦봄까지 윗목의 자리끼에는 살얼음이 끼었다. 하아, 자다 깬 나는 날씨를 가늠하기 위해 입김을 불어보곤 했다. 흰 입김이 빨려드는 창호 사이로 쏟아내리는 별빛과 새파란 달. 이따금의 헛기침, 풀벌레, 소, 송아지, 개, 병아리, 닭, 꿩, 그리고 수축과 확장을 지속하는 도리와 보의 소리.
밤은 늘 요란했고, 신새벽의 조부는 자주 마루에서 곰방대를 물었다. 잠에 젖어 희뿌옇게 흐려진 내 눈에 비치던 그 정경과 냄새와 불빛, 소리. 아니, 소리라고 할 수 없는 그 낮고 낮은, 집안 전체를 서늘하게 어루만지던 그 스산하고 다정한 집울음.
이따금 새벽잠을 깰 때면, 내가 그 소리와 냄새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내가 생각해도 기이할 만큼 Olsen에 빠져있는 중.
배가 부르면 감각이 예민해지기에 멀미에 취약해지곤 한다. 취하거나 배가 부르면, 혹은 감각이 고조되면 무작정 뛰거나 걷고 싶어하는 것 또한 오랜 버릇. Locatelli를 들으며 비가 오는 도산대로를 30분 가량 걸었다. 아무도 없는, 내 발로 걷고, 뛰고, 물웅덩이를 넘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비와 공기와 바람과 주변의 냄새를 맡고, 내 몸의 무게를 지닌 무릎과 발목의 부담을 알고, 좋아하는 노래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아주 천천히, 하지만 끈질기게 젖어가는 어깨와 발끝의 감각을 느끼고.
샤로수길을 처음 방문했고. 이미 정착된 명칭을 과도하게 간지러워하는 것 또한 배반적 태도라 생각했으며.
분명한 질감, 미감, 시각적 호사를 함께 겸비한 음식은 맛있었고, 달고 또 달아서 입술에서 식도까지의 선명한 길을 만들고.
웃음은 형태를 지니고, 말은 스러지지만 감정은 남아 불이 닿은 것 마냥 짙고 깊은 자국을.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매양 믿을 수 없을 만큼 짧고, 강렬하고, 아쉽기만 해서. 좋은 기억 이후의 나는 한동안 나누었던 대화와 화제들을 조각조각 분류하여 어딘가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채워넣는 작업을 하곤 한다.
모님의 글이 완결난 것이 기뻤고.
두 분의 상처가 흉이 지지 않기를 살짝 기도했으며.
주물팬, 무쇠솥, 기자 식도. 호시탐탐 내 방안에 요리기구를 들이려 안달하는 남자에게 그만 좀, 이라는 메일도 보내고.
가장 오래된 책. 이미 덮어 책장 속 어딘가에 단정하게 숨겨놓은, 내 연모와 취향과 향수의 원전.
돈을 받는 글을 쓰고 있기에 다른 글을 쓰는 것이 주저된다는 말씀에 Elementary에서 NA에서 내뱉은 자신의 말들을 허락없이 인용한 블로그를 발견하고 익명성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며 식은 모습을 보이던 Holmes가 떠올랐는데. 나도 그랬다. 돈을 받는 글과는 다른, 그저 내 감정과 기억만으로 아는 이들에게만 열어놓았던 채널을 누군가 허락없이 인용하고, 돈을 받는 출판물을 냈을 때. 정말이지 용납이라는 말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수도 없이 용서와 이해라는 천칭 사이를 갈팡질팡했음에도 종국의 나는 내 의도와 본질에의 폄훼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저는 아주 즐겁게, 몇년이 지나더라도 모님의 개인지와 모님의 출판물을 기다릴 겁니다.
-주어지는 역할의 가벼움이 아쉬울 만큼 연기의 묵직함이 있음. 그 행동언어의 우아함 또한.
많은 이들을 객쩍어하는 나이지만 누군가 만두, 라는 검색어로 내 블로그를 찾는다면 뜬금없이 아주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북적이는 거리 한복판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요구하는 남자들의 거대한 자신감이 질릴 때가 있다. 비행기 옆좌석, 카페, 펍이나 바 등지에게 가벼운 이야기와 함께 무언가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서로의 명함을 주고 받거나, 혹은 명함을 받으며 다시 이 곳에 오게 된다면, 또는 어느 시간이 맞는다면 연락해. 커피나 한 잔 하자, 는 스침을 통해 만난 인연도 많고 그렇기에 꼭 챙기게 된 사람도 적지 않다. 일을 할 때 건너 건너 도움을 받은 경험도 더러 있고.
하지만 당당하게 번호를 요구하는 그 뻔뻔함은 뭘까. 이른바 간택과도 같은, 이런 내가 너를 선택해줬으니 너는 내게 반드시 번호를 알려주고 내가 내키면 너에게 연락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줘야한다는 그 기이한 자아, 비틀린 자신감.
이 나라의 저변은 언제까지 이 비대함을 불릴 셈인가.
굉장히 불쾌한 영화였다. 무지ignorance와 순진함naiveness로 세상의 위선과 위악을 감추거나 드러내는 방식 자체가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고, 저런 식으로 아역을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다시금 생각했고. 노골적으로 이런 시선을 등장시켰던 영화 Room, 또한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등장인물들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품위dignity는 있었다. 3년이라는 연구 기간 동안 차라리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을.
플라톤이었나. 보다 낮은 것을 일컫기 위해 보다 고결한 것을 불러와서는 안된다. 그것이야 말로 미혹이다, 라고,
이런 시기까지 여성과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비극을 멋대로 - 관음성을 비롯하여 - 다루는 영화를 보고싶진 않았다, 정말.
좋아하는 영화 감독은? 이라는 문장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름 몇개를 제외하고, 기술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은 Soderbergh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연기 연출, 리듬, 촬영, 미술, 음악, 스피드, 그 신적인 편집. 적어도 보고난 뒤의 찜찜함 없이 말끔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재밌는 이야기에, 잘 만들었고, 좋은 배우들의 말끔한 연기가 있으며- 관객들에게 지금 앉은 그 시간 외엔 아무 것도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그것이 한계이자 장점이라는 것 또한.
MET - Levine 좀 잊게! - 의 새로운 토스카, 라.
그러고 보니 지금 시향의 객원이 플룻 솔리스트였던 Fischer라고. Ermler 사후 큰 관심은 없었는데, 관악기를 다루었던 지휘자를 경험한 적은 없어 한 번쯤은.
-은선 킴도 한 번은 듣고 싶었는데.
이를 테면 나는 아직도 동일한 책의 한역본과 일역본이 있다면 일역본을 선호하는 편으로, 이는 내가 일어를 한어보다 잘하기 때문 혹은 역본의 차이 등지의 이유가 전혀 아닌 한창 글을 익힐 5세에서 8세까지의 시기에 조부가 소유하고 있던 세로쓰기의 책만 접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특별한 내 의도가 아닌 내 무의식이 가로 줄글이 아닌 비스듬한 가로+세로의 대각선으로 글을 읽어내리기에 대부분의 글을 속독하는 편이지만, 그렇기에 내가 읽은 글의 내용이 타인과 다르다거나 읽는 도중 몇 문장을 통채로 빼먹는다거나 -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학습 부진아 취급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 - 하는 일이 잦다. 무언가를 비판하고 비난하고를 떠나 결국은 세대의 차이이며 접한 회수와 노출과 범위로 인해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거나, 의 둘 중 하나라고 본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contents가 아닌 구조form의 차이랄까. 나는 공식 홈페이지가 없는 개인이나 법인, 회사 등등이 내세우는 물품을 믿지 않지만 카페나 블로그, 인스타, 카톡 등을 통해 물품을 거래하는 일이 더 자유로운 요즘의 이들처럼.
문제는 새로운 경로를 접할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 남은 경로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겠지. 얼마 전 남자가 국내에서 시외버스를 예약하려다 인터넷 사이트는 사라졌고 관련 앱은 국내 마켓에서만 받아지고 직접 구매는 해당 터미널에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어떤 방문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오래된 것은 잘못된 것, 혹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태도. 나는 갈라파고스화된 일본의 면면을 존나게 짜증스럽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미 늙어버린 사회에서 그가 전해주는 메세지가 완전히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적어도 그 사회에서 노인들은 시스템에서 완벽하리만큼 소외당하고 있지는 않으니.
언제까지 우리는 그저 배우라고 등 떠밀고, 등 떠밀릴 것인가.
남자가 두고 간 과자를 주변에 신나게 뿌리고(...), 소비기한이 아슬하게 지난 것들 몇개는 내가 먹고 있는데 장인의 성이 쓰인 노렌 외 연락처도 없다는 京都의 어느 과자점에서 지인의 지인에게 연결을 부탁해 사왔다는 흰 앙금 만주가 너무 맛있어 혼자 운다. 포장마저도 미색의 유지와 육각의 귀퉁이를 섬세하게 가로지르는 염색 끈의 담백함 뿐, 입구를 갈무리한 테입이나 풀도 없어 왜 상미와 소비기한이 짧은 지에 대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_;
이런 변태성이 옳은 맛을 자아내는 것일까, 옳은 맛이기에 이런 결벽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을.
그리고 나는 언젠가 高岡에서 먹었던 100%의 딸기 쇼트 케이크를 떠올리고.
-여러모로 굉장했지만 공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그렇기에 덧붙일 말도 사라진.
1913년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는다. "모든 인간이 열네 살적 그대로 머문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어쩌면 오히려 그러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1913년 초에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아직 열네 살이다. 그의 일기를 읽는 사람들은 그가 나중에 열네 살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을 기뻐한다. 어쨌든 그는 게오르게의 제자로서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못생기고, 너무 성급하고, 너무 투덜거려서. 아우크스부르크 레알김나지움 학생인 브레히트는 겨우 단어장 크기밖에 안 되는, 세련된 푸른색 격자무늬 종이로 된 일기장에서 끝없는 봄날의 "천편일률"과 "무미건조"를 한탄한다. 산책, 자전거 타기, 체스, 그리고 독서가 그나마 도움이 된다. 브레히트는 실러, 니체, 릴리엔크론, 라거뢰프를 읽고 열심히 기록한다. 그러고는 일기장에 사춘기의 멋진 서정시들을 풀어놓는다. 달과 바람, 길과 저녁식사에 관한 시들. 그러다가 1913년 5월 18일이 된다. 그 사이 열다섯 살이 된 브레히트는 "비참한 밤"을 겪게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1시까지 격심한 심장박동이 있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고 12시에 잠에서 깼다. 너무 심해서 엄마에게 갈 정도였다. 끔찍했다." 그러나 곧 괜찮아진다. 바로 다음 날 그는 일어나 시를 짓는다. 그 무렵 아우스크부르크의 5월은 따뜻해서, 그는 시에 '여름'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나는 풀숲에 누워 있네
까마득히 오래된, 아름다운 보리수 그늘 아래
햇빛에 반짝이는 풀밭 위의 풀들은 모두
바람에 가만히 고개 숙이네
-몇 에피소드 쯤의 Elementary에 뉴욕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40년 이상 자료를 모으고 5,000페이지의 초고를 작성하지만 결코 탈고하지 못한 습작가 케릭터가 등장하는데, 이 책 생각이 몹시도 났다.
언제나 좋아했던 Yokomizo Miyuki의 작품을 사서 걸 수 있는 공간을 지닌 사람이 된 것을 알았을 때. 인생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구나, 하고.
-할머니와 둘이 잔치를 벌였다. 눈을 바라보며 마시는 술. 50도라는 술을 할머니는 꿀껏꿀껏 마셨다. 표고버섯을 닮은 버섯이 들어간 수프를 홀짝이며 우크라이나식 물만두 와레니키를 집어 먹고 돼지간 꼬치구이를 먹었다. 돼지를 키우고 있었다. 키예프에 있는 아들이 얼마 전에 와서 죽인 돼지의 간이었다. 할머니는 가끔 오른팔이 악수도 하기 힘들 정도로 저리다고 했다.
"나이 탓인지, 방사능 탓인지는 신만이 아시겠지."
인생관과 과학이 뒤죽박죽 섞인 말이다. 이 주변에서는 모두 그렇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체념으로 의심을 이겨 낸다. 그렇게 오늘이라는 날을 이어 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확실하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불처럼 타는 듯한 술로 목구멍을 태운다. 페치카도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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