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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런, 이 정도의 화질과 색감과 음악과 연기가 주는 시대의 감각.
이래저래 집안 오디오 장비를 손 보고 있는 중으로 - 4K 시스템은 아직 들일 생각이 없지만 - 요즘 내 구매의 구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당근을 자주 이용하는데. 이상하리만큼 중노년의 판매자들이 부연 설명을 하고 싶어하여 정말 의아할 따름이다. 굳이 작동법을 설명하겠다거나 공부를 시켜주겠다, 정말 팔고 싶지 않았다 내 비디오 클립을 봐달라 등지의, 그러면 사지 말까요? 되묻는 내 말에 아니 그건 아니고. 말을 줄이는 모습에 물음표를 띄우며 자전거 바구니에 물건을 실을 때마다 한결같은 문장이 늘 따라붙는다. 여자분이 나오실 줄 몰랐어요.
그렇게 많은 말을 세상에 던지며, 여전히 또 말을 하는 동시에 눈앞의 우위를 누리고자 하는 연약함.
나와 내 동년배의 여성이 얼마나 많은 말을 참고 있는지.


워낙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아끼는 사람의 이미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 여전히 관찰자로 남는 시선이 마음에 들어서 - 그럼에도 어쩌면 이렇게까지, 자주 생각합니다.
빙판이 남아있던 길을 자전거로 지나다 크게 넘어지며 어쨌든 낙법은 취했는데. 하루이틀은 팔꿈치가 못견디게 저리다 사흘 전부터는 일어날 때마다 느껴지는 허리 통증에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낙법도 했는데! 라는 변명에서 느껴지는 나이듦의 기조랄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내가 운동을 한 과거에 대해 자부심이 크구나, 하고.
그러고보니 언젠가 코치로 일하는 오랜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우리는 몸으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 많은 운동광이 그런 것처럼 -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타인과의 육체적 교류나 얽힘에서 오는 열망에 휩쓸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의 자존감을 채우진 못하리라고.
어머니가 말한다. 사는 게 정 힘들 때는 옷장 정리를 해라. 그러면 근심이 손으로 빠져나가고 머리가 맑아질 게다.
어머니는 그런 말을 할 만하다. 어머니 집에는 옷장이 다섯 개 있고 반닫이도 다섯 개나 된다. 사흘 연달아 옷장과 반닫이를 치워도 여전히 치울 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 내 가장 격렬한 질투를 자은.



언제나 꾸며진듯 꾸며지지 않은 것에 우리는 열광하고.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추레함과 나른함 중 언제나 후자를 열망하게 된다는 것이.
메타버스 운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던. 소셜 미디어가 유행할수록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의 욕망은 상승하고, 그에 비례해 확실한 타인의 시선과 내 발 닿은 아래의 공간감을 원하기에 도피가 아닌 형태의 - 게임이나 커뮤니티가 아닌 - 가상현실은 쉽사리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모든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무언가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
영혼은 단지 전기 신호에 의한 착각일 뿐이라 거론했을 때 종교가 있는 남자는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이 마음의 무게감은 어디에 저장되는 것일까.
좋은 것을 먹었을 때의 기쁨, 좋아하는 분을 만났을 때의 즐거움, 흥미로운 화제와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난 뒤의 환희 같은 것들이 저장되는 경로와 내가 다시 기억을 뒤져 그 순간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저마다의 머릿 속 증강현실에 살고 있고.
그럼에도 꾸준히 이어지는 인연과 여전히 목이 마를 만큼 아름다운 물건, 그 물건들을 고르시는 취향, 제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이야기와 산책 경로를 알려주는 명료한 목소리, 좋은 밤이라고, 만나서 너무나 기쁘다고 몇번이나 거론해주시는 약간은 느긋한 그 톤이 좋아서.
아, 이 목소리들은 오선지 위 샵 어딘가에서 어딘가까지겠구나 하고 눈을 뜨자마자 생각해버리고.
정확하게 발등에서 떨어지던 바지선과 아름다웠던 블라우스의 절개 라인, 핀 조명 아래 영롱했던 반지와 잘 묶여있던 뒷머리. 어깨부터 종아리까지 코르셋의 힘 없이도 명확하게 두드러지던 부드러운 선과 마티네 펄 목걸이의 오버톤, 오리엔트, 미키모토 진주의 겹과 깃이 좁던 코트와 가는 어깨를 감싸고 있던 감촉 좋은 숄, 잔무늬가 촘촘했던 치파오의 청남색과 대비되던 루비의 반사광을 떠올립니다.
어떤 기억은 이후의 자극에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길 바라고.
훌륭한 접객과 하나하나 빠지지 않았던 코스, 잘 정돈된 가게의 인테리어와 옛 공장의 흔적이 마구 엉켜있던 한적한 골목길,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내내 맛있을까 생각했던 포장 피자의 맛이 엄청나다는 사실도 기뻤습니다.
오늘의 기일도, 번아웃도, 너무나 많은 글을 봐 더이상 다른 욕망이 일지 않는다는 마음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두 분 모두 푹 쉬시길 바랍니다. 좋은 주말!




-그리고, 사랑.
도망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과정조차 내 인생이 되어버려서.


언제나, 언제까지나 현재형의.
시간이 깃들기 시작한 집의 고장난 중문, 디폴트 옵션을 설정하지 않은 IRP, 몇 달째 책상 위에 놓여있는 번역공부용 원서. 뭔갈 하지만 영원히 하고 있지 않은 듯한 기분.
집은 온통 낡은 것들 뿐이다. 책장을 넘어 침대 밑까지 흘러넘치는 중고책, 원목 없는 플라스틱 의자들, 어디선가 받은 갤럭시 탭 초기 모델, 오래된 TV, 십 년 된 아이맥, 메탈 냉장고, 당근에서 산 DVD 플레이어, 스마트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은 삼 년이 넘은 유선 선풍기 하나인.
이 낡은, 이 허름함이 내겐 숨가쁘게 사랑스러워서.
시향의 콘서트 하나를 예매했고.
주말의 약속을 오늘부터 설레어한다.
영혼은 닳는다.
게이코가 그 사실을 깨달은 건 언제쯤이었던갘
영혼은 지치고,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영원히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한 일을 겪거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살아있으면 닳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을 오래 지속시키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취미와 최애를 만드는 것이다.







너무나 좋아하는 얼굴, 그 계절이 있던 자리.
내가 몇몇의 소셜미디어를 화제를 확인하는 것 외 그다지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낮은 사회성과 더불어 유행하는 것들을 굳이 소비하고 - 생카, 각종 축하카페, 인증샷, 광고, 인형, 공식이 아닌 굿즈 - 싶지 않음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알던 세계의 숲과 계절에서 님프들은 출몰하지 않는다. 신들도 없고, 조상신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 자신의 문화와, 법률과, 감정을 제외하면, 그 무엇도 우리를 벌하거나 위로할 수 없고, 그 어떤 증오나 사랑의 행위를 긍정해 주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이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지만, 부모님의 세대는 미신의 족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던 최초의 세대에 불과했다. 너무나도 짧은 이해의 시간이 흘러간 후 나 자신의 세대는 점점 게을러졌다. 그 결과 우리는 우주의 작동 원리는 어떤 어린애라도 이해할 수 있는 자명한 이치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원리는 인류라는 종의 선천적인 성향인, 숨겨진 패턴에 대한 격렬하고 무절제한 집착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으로부터 의미와 위안을 추출해내려는 비이성적인 갈망에 전적으로 반하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떤날에는 빛에게 빚만 진것 같고.
책을 읽고 이따금 글을 쓰고 간간히 자전거를 타고 얄팍해진 월급 명세에 음, 생각을 가다듬고 나니 어느덧 일 월도.
지금껏 맡은 일을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과 일을 해본 적이 없기에 아니 왜 이렇게 일을 하지? 왜 저렇게 참견을 하지? 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거지? 라는 새로운 종류의 짜증을 잠재우기 위해 자주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연초에는 고아 모임 - 내가 지은 명명이 아님; - 을 했고. 이제는 아버지의 나이를 넘어선 나와 실체 없이 형태로만 남은 부모에 대한 기억을 이리저리 헤집어보던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던 한 마디가 웃기고 슬펐다. 뭔가를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뒤늦게 나타나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 하고.
어렸을 때는 거짓말처럼 나타난 누군가가 내 보호자를 자처하는 상상을 했어.
시간 낭비와 지지부진, 자신을 알지 못하는 형태를 혐오하는 스스로를 불현듯 깨닫고.
한국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누군가 내 선택을 대신해주길 바라는구나, 새삼.




노골이 상징을 대신하는 시대.
백치를 철도, 칼, 그림으로 대변하는 글을 읽다가 간접 효용의 가치가 거의 사라져버린 작금에 이미지는 오로지 과거의 유산으로만 그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을.
기억과 추억, 그에 얽힌 향수가 담긴.
누구나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세대에 사진과 박제, 소유를 이야기하는 것도 덧없어져버린.
근 십 년간 얼마나 많은 담론이 폐기되었는지.
헌치백를 읽었고 읭 하는 감상과 79년생 장애 작가가 써낸 이 글에 일본 우파 정치 노인네들 참 좋아했겠네 싶었으나. 글 자체보다는 이 글을 쓸 수 있는 기개와 여전한 생존, '돈이 있고 건강이 없으면 매우 정결한 인생이 됩니다'라는 문장이 무척 좋았다.
서경식씨를 추억하고.
내가 이 나이까지 살고 있다니, 라는 아연.
과일은 달아지고 디저트는 달지 않아지는 세계. 누구도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 사회.
매 년초에는 쓰레기처럼 살곤 한다. 뭔가 결심하고 곧 포기하는 한갓진 과정에 대한 심술과 이렇게 살다 대충 스스로를 추스리기 시작하면 그럭저럭 연말 때까지는 바뀐 모습을 유지할 수 있어서. 올 해 적당한 결심은 하루 한번쯤은 집을 계단으로 오르기, 이고 오늘까지는 나쁘지 않은 결과를 유지하는 중.
연말과 연초는 일을 하며 남자와 보냈다. 마지막 해지는 사진, 첫날 해돋는 사진을 꼭 찍겠다는 남자에게 해는 내일도 뜨고 내일도 져. 날짜와 시간은 인간의 개념일 뿐인데 왜 환경에 감정 이입하는 거야? 단조롭게 묻자 너와 함께, 라는 의미 부여가 중요하다고 웃어주는 남자의 얼굴에 우리도 나이가 들었구나 싶었다.
내 장수와 번영을 바란 적 없지만, 그저 네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드물게 영화와 원작 모두 좋아하는.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애를 쓰다 결국 자신의 본질에 굴복하고 아버지의 길을 따르는 뻔한 아들과 노래와 케릭터에 집중하다 황량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이 그다지 묘사되지 않은 아쉬움은 있었지만, 루시 그레이-캣니스 연관성과 추후 캐피톨에서 캣니스를 맞이하는 스노우의 심정을 이미 전작을 알고 있는 외부 관객의 입장으로 지켜보게 되는 양상을 잘 그렸다는 생각이. 영화의 엔딩에서 현재와 노년 스노우의 독백이 겹치는 것도 그렇고.
헝거게임 마지막 편에서 스노우를 겨누던 캣니스가 결국 활을 바꿔 다른 사람을 죽이고 스노우가 광소하다 군중한테 휩쓸리는 장면이 계속 떠올랐음. 스노우는 캣니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자신의 모든 과거와 죄가 이렇게 용감하고 빛나는 젊음의 형태로 나타난 것에 진짜 감탄하지 않았을까.
오라, 이 아름다운 죽음이여.




늘 이맘 때면 깊게도 떠오르는.
네 다정이 내겐 언제나 빚이었어서. 나는 더듬거리듯, 주춤거리듯 간신히 낮은 마음을 고백하고.
죽을 만큼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걷고 말하고 돌아다니고 설명하고 팔고 웃고 메일 주소를 나누고 그럼 내년에, 라는 말로 악수를 대신했다.
달여를 비운 집은 채워진 먼지와 묵은 공기, 공과금 용지와 언 수도로 나를 약간 지치게 만들었지만 쌓인 일거리를 해소하는 기쁨이 없는 것은 아니고.
창을 열자 위아래 없이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에 문득. 갓 스물이 되었을 무렵 아르바이트처의 친목에 정신없이 빠진적이. 그러다 당구-카드-블랙잭-도박이라는 큰 도돌이표에 휘말려 기준만 유지하면 되는 기숙사며 장학금 모두 탈락한 채로 새벽 네시의 푸른 밤과 눈을 보던 기억이 있다. 천사백만 원의 빚을 진 명세로 그냥 죽을까, 한강에 갈까 담배를 물며 생각했던. 정말 온전히 내 잘못이라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리고 일주일 후 모 주식이 터졌고; 나는 빚을 모조리 갚고 그 판을 떴으며 지금도 백원을 벌어도 번것이라 생각하기에 뭐든 잘 포기하고 별 미련도 없으며 로또, 가챠 등지의 확률이 개입되는 게임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내게 온 행운이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것이 아님을 알고.
사람의 마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늘 무르고.
아무것이었고, 또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 하나의 존재.
직접 경험이 책 영화 등지의 간접 경험을 따라갈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문득 근간에는 내가 해봤다, 의 언사와 인증이 지나치게 중해진 것 같기도.
어쩐지 아프다는 소식을 많이도 듣고 있는 요즘. 모쪼록 천천히 건강 보살피시고, 내년에는 여전한 얼굴로 뵐 수 있길 소망해봅니다. 평온한 연말 되세요.






어딘가 무언가 반드시 있는 것처럼.

급하게 읽을 책를 찾아 어느 중고샵에서 1유로에 샀는데 생각보다 정말 좋았던. 내 올해의 책.

입 속에 들어가는 것에 큰 관심이 없기에 - 생존의 유지와 욕구와 경애의 발현이 같은 창구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늘 나를 괴롭게 하고 - 화제가 된 무언가가 정말 맛있다고 느껴본 기억은 드물지만. 그 와중에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던 드문 음식.
나는 아직 거리를 걷는 중으로.
전두엽을 간지럽히는 리듬을 이유없이 흥얼거리고.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한다.
Who's got a beard that's long and white?
Santa's got a beard that's long and white
Who comes around on a special night?
Santa comes around on a special night
Special night – beard that's white
Must be Santa, must be Santa
Must be Santa, Santa Claus
Who wears boots and a suit of red?
Santa wears boots and a suit of red
Who wears a long cap on his head?
Santa wears a long cap on his head
Cap on head – suit that's red
Special night – beard that's white
Must be Santa, must be Santa
Must be Santa, Santa Claus
Who's got a big red cherry nose?
Santa's got a big red cherry nose
Who laughs this way: "Ho-ho-ho"?
Santa laughs this way "Ho-ho-ho"
Ho-ho-ho – cherry nose
Cap on head – suit that's red
Special night – beard that's white
Must be Santa, must be Santa
Must be Santa, Santa Claus
어쩐지 가장 좋아하는 이 시기의 노래.
어느 공원을 조용한 인사와 거닐고 있을 때. 쨍하고 깨질듯한 공기와 흰 입김을 함께 바라보며 가늘게 들려오는 음악이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인 걸 알아차린 순간.
이른 인사를 남겨봅니다. 즐거운 연휴, 춥지 않은 주말 되세요!





어떤 기억들.
많이 배우고 늘 느끼는, 짬을 내어 다녀온 미술관과 도서관마저도 마스크 너머 감탄을 감출 수 없는 여정이지만. 해 지자 마자 돌아간 호텔 TV 프로그램이 제일 재밌었다거나 환승 공항의 라운지 체어에 누워 뜨고 지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일정이 내 몸에 가장 편하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것도.
잠깐 시간을 보낸 도쿄의 어느 공원과 어느 도로는 디디는 곳곳마다 울며 걷던 기억밖에 없어 먼 과거의 나를 약간 측은해하게 되었다.
거의 음악을 듣지 않고, 그저 타국의 언어와 방송을 많이 듣고. 다시 끝도 없이 읽고 읽고 또 읽는 나날.
오래 전자우편으로 소통을 했던 협력처의 누군가는 내가 안면을 익힌 다른 누군가를 이야기하며 두루 인정받는 전문직이기에 봉인할 수 있었던 선고를 이야기하고. 다음날부터 나는 어떤 눈으로 그 사람을 봐야할지 몰라 마주치는 시선과 접혀드는 눈매를 내내 피하고.
그럼에도 조금도, 집이 그립지 않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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